’98 국악계 총평
1)권 오 성*
1998년은 1997년말에 불어닥친 외환위기와 IMF 체제로 접어들면서 어느해보다도 문화․예술 전반의 활동이 위축되었던 한 해였다. 국가 전체의 경제위기가 오면 제일 먼저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 문화예술분야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통음악에 관심이 없거나 우리문화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들의 안목으로 보면 98년 국악계의 한 해는 고요하고 정적한 분야로 일 년 동안 허송세월을 보낸 것으로 비춰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한 해의 음악활동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98 한해의 국악공연은 나름대로 분주하게 펼쳐졌었다.
공연의 성격이나 그 내용도 다채로왔던 전통음악의 공연과 창작음악회 그리고 전혀 새로운 구성으로 파격적인 음악회도 있었다. 각 악단의 정기공연과 각 대학 학생국악관현악단의 정기공연도 있었고 개인 독주․독창회가 있었으며, 특이한 이념을 갖고 모인 소규모 단체의 연주회 등도 있었다. 또한 스승들을 기념하는 제자들의 발표회도 있었고, 각종 경연대회의 수상자 발표회가 있었는가 하면, 순수한 동호인들의 공연도 있었다. 마치 복잡한 밀림의 상태와 흡사했던 것이 98년 국악계 한 해의 공연현황이었다.
인상에 남는 주요한 공연들을 잠시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제 15대 대통령 취임식 및 축하공연과 나라사랑 음악회, 국립국악원 신춘국악대공연-새 봄을 살포시 우리 음악에- 등 특별한 이슈를 위한 공연이 있었다. 대한민국정부수립 50주년기념 - 청소년과 함께하는 우리음악회나 실업기금 마련 김덕수패 사물놀이공연과 ‘Big Bang’ Drum from the World International Festival이 있었는가 하면, 1998 한국의 신명, 그 소리와 몸짓 - 제29회 중요무형문화재 발표공연도 있었다. 98 경주세계문화엑스포 - 새천년의 미소 전야제 및 세계 여러나라의 가무팀의 공연이 있었는가 하면 영산재 - 법현스님 발표회와 같은 종교음악 공연도 있었고 용인예술단의 창단공연도 있었다.
해외 공연 중에서는 98 아비뇽축제 「한국의 밤」 이 청중들의 대단한 환호를 받았고, 국립국악원의 제4회 아․태 민족음악학회 학술대회 기간 중 음악축제 공연이 대만의 대북시에서 개최되어 각국학자들의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그 밖에 정농악회의 재미교포를 위한 국악공연과 한울림 예술단의 98 U. S Tour 등이 있었다.
창작음악의 공연으로서는 윤소희 작곡발표회, 98 해금역사축제 - 현대해금작품세계, 98 차와 우리음악의 다리놓기 - 茶樂, 윤영선 작곡발표회, 신악회 창작음악 연주회 등이 있었다. 특기할 것은 국악학계의 거두이신 晩堂 李惠求博士의 九旬잔치 축하연과 기념논문집 봉정식이 있었으며 ‘이혜구 학술상’이 제정되어 소장 학자 2명이 공동수상한 바 있다.
앞에서 간단히 중요한 공연을 소개한 바, 이들 잡다한 행사들의 내면에 흐르고 있는 시대조류를 조감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창작분야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시대의식이랄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서구음악의 주체적 수용의지가 담겨 있다고 하겠다. 한때 한국음악계는 서구음악이 모든 음악활동의 기틀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근대에 와서 서구문화의 종속성에서 탈피하여 주체적 가치관이 확립되기 시작한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교통의 발달로 인한 지구촌문화에 대한 의식의 증대이다. 우리들이 원하던 원치아니하던 간에 국경의 벽은 무너지고 문화전파는 정보화시대에 걸맞게 속도가 빨라지고, 인터넷 등이 쓰이며 공간을 통해서 공중파와 같이 자유자재로 이동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음악이 해외에 많이 소개되고 동양 여러나라의 음악 또한 우리나라로 밀려들 수 밖에 없는 형국이다. 98년 한 해는 IMF 체제하에서 예년에 비해 해외공연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해외공연을 통한 문화교류는 보다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며 21세기를 문화의 시대라는 말을 실감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았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 한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