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前期
鄕樂의 三紘 傳統
宋
芳 松
‥‥‥‥‥‥‥‥‥‥‥‥‥‥‥‥‥<목 차>‥‥‥‥‥‥‥‥‥‥‥‥‥‥‥‥
Ⅰ.
머리말 : 鄕樂 三絃의 音樂史的 位置
Ⅱ.
高麗社會의 三絃과 朝鮮社會의 一局面
Ⅲ.
朝鮮社會에서 演奏된 三絃의 音樂文化
1.
선비社會의 거문고 傳統
2.
伽倻琴과 琵琶의 傅統
Ⅳ.
맺는말 : 辯榮 三絃의 새로운 理解
‥‥‥‥‥‥‥‥‥‥‥‥‥‥‥‥‥‥‥‥‥‥‥‥‥‥‥‥‥‥‥‥‥‥‥‥‥‥
Ⅰ. 머리말 : 鄕樂 三紘의 音樂史的 位置
조선 전기 음악사는 한국음악사의 발전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시대의 음악 문화가 오늘까지 전승되고 있는 전통음악의 직접적인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조선 후기 음악문화의 근원일 뿐 아니라, 그것은 고려음악문화의 역사적 흐름을 직접
계승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 전기 향악의 역사적 전통을 이러한 음악사적 관점에서
조명해
보면, 고려 향악에서 연주되었던 삼현(三絃)의 전통이 조선전기 향악의 삼현에 계승되고
있다고 보아야 타당할 것이다.
『고려사』(高麗史) 악지에 전하는 가야금·거문고·비파가 1430년(세종12) 당시에
향악
의 중요한 현악기로 전승되었고,1) 또 건국초기 향악의 삼현이 성종(1469-1494) 당시의
『악학궤범』(樂學軌範)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2)『세종실록』(世宗實錄)과『악학궤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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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世宗 12年 3月 戊午) 詳定所啓, 請學取才, 經書諸藝數目‥‥(중략)‥‥
玄琴 伽倻琴 琵琶 大采琴 唐琵琶 書 . 己上鄕樂.『世宗實錄』, 卷47.28b14. 번역은
이혜구역,『세종장헌대왕실록』(서울: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0), 卷7, 168쪽.
2)『樂學軌範』, 권7.13b-21a,(玄琴), 21a-23b10(鄕琵琶), 23b11-28a(伽倻琴).
은 고려시대 관현방(管絃房)과 대악서(大樂署)의 우방(右坊)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삼현의 전통이 커다란 역사적 변천을 거치지 않고 제대로 조선 초기에 전승되었음을
입증
해주는 문헌적 근거라고 하겠다. 고려향악의 전통이 조선 초기에 잘 전승되었음을
보여주
는 다른 문헌적 증거는 만전춘(滿殿春)·서경별곡(西京別曲)·청산별곡(靑山別曲)·한림별곡
(翰林別曲) 등의 고려 향악곡을 전하는『세종실록』·『대악후보』(大樂後譜)·『시용향악보』
(時用鄕樂譜)·『경국대전』(經國大典)·『금합자보』(琴合宇譜)같은 문헌들이다.3)
이러한
문헌자료를 근거로 음악학자들이 조선초기 향악에 대한 연구결과를 많이
발표했기 때문에,
조선 전기음악사의 일면이 비교적 자세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향악기와 향악 곡들은 거의가 그 당시의 왕족과 양반
층을 중심으로 삼은
왕립 음악기관에서 악공들에 의해서 전승된 향악의 전통이었지 궁중 밖의 조선사회에서
전
승되었던 향악의 전통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고려사회에서 향악의
전
통이 궁중 밖의 조선사회에서 어떻게 전승되었는가라는 의문은 조선 전기음악사의
연구 분
야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의 하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본고의 목적은 고려사
회에서 연주됐던 향악의 전통이 어떠한 양상으로 어떻게 조선사회에 전승되고 있는지를
밝힘으로써, 조선전기 향악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함에 있다.
조선전기 음악사연구에서 기본적인 문헌사료가『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泳)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조선 음악사연구의 기초작업으로 그 문헌의
음악기사
색인의 일부를 이미 음악학계에 발표한 바4) 있다. 그렇지만『조선왕조실록』이 어디까지
나 정치적 지배자의 위치에 있었던 왕족과 양반층을 중심으로 삼은 기록이기 때문에,
그것
은 궁중밖 조선사회의 향악연구에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당하다.
『조선왕조실록』의 이러한 한계성을 인식한 필자는 조선전기 문인들이 편술한
만록(漫
錄)·야사(野史)·일기 59종을 모아놓은『대동야승』(大東野乘)에 주목하였고,『대동야승』
의 음악기사 색인을 일찌기 작성하여 음악학계에 발표하였다.5) 그러므로 본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연구방법은『대동야승』의 음악기사를 기본적인 문헌사료의 근거로
삼고,
『조선왕조실록』의 음악기사를 부차적인 문헌자료로 삼아서 연구를 진행시키려는
것이다.
----------------
3) 이러한 문헌에 전하는 고려의 향악곡에 대한 통계 및 설명은 拙著,『韓國音樂通史』
(서울:一潮閣,1984). 286-88쪽 참조.
4) 來芳松, "朝鮮王朝實錄 音樂記事 索引(Ⅰ-Ⅳ),"『韓國音樂硏究』(서울:한국국악학회,
1986), 제15/16집, 119-219쪽;『民族文化論叢』(경산:영남대민족문화연구소, 1987),
제8집, 255-80쪽;『人文硏究』(경산:영남대인문과학연구소, 1987), 통권제13호, 351-
405쪽;『音樂論壇』(서울:한양대음악연구소, 1988), 제4집, 461-521쪽. 아직 발표되지
않은 朝鮮王朝實錄 音樂記事 索引(V-Ⅷ)은 앞으로 하나씩 따로 발표할 예정이며,
낱개로
발표된 색인의 종합색인은 머잖아 단행본으로 출간을 위해서 준비 중임을 여기서
밝혀두는
바임.
5) 1986년 5월 17일에 탈고된 "大東野乘의 音梁記事 索引"은 拙著『高麗音樂史硏究』
(서울:-志社, 1988), 340-59쪽에 발표됨.
궁중 밖 조선사회의 향악문화를 음악사적 관점에서 제대로 밝혀내려면, 향악의
여러 주제를
다른 시각에서 다양하게 점검해야 마땅하겠지만, 본 연구의 범위는
가야금·거문고·비파라는
삼현, 곧 향악의 대표적인 세 현악기에 한정하고자 한다. 이렇게 연구범위를 한정시키려는
까닭은 첫째 본인이 고려사회의 삼현에 대한 연구를 이미 음악학계에 발표 한 바
있어서 우선
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고, 둘째로 향악의 삼현에 대한 음악기사가
『대동야승』
에서 예상 밖으로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Ⅱ. 高麗社會의 三紘과 朝鮮社會의 一局面
건국 초 조선조정에서 전개되었던 향악의 전통은 고려조정에서 사용됐던
향악의 전통을
거의 그대로 전승했으므로, 궁중 중심의 향악전통이 큰 역사적 변천을 거치지 않았다고
머리말에서 언급하였다. 조선전기 조정의 향악전통이 그러했다면, 조선사회에서 전승된
향악의 삼현전통도 같은 시각에서 추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본론의 전개에
앞서
먼저 점검해야 할 일은 첫째로 고려사회에서 전개되었던 삼현의 전통에 대한 역사적
개
관이고, 둘째로 향악의 삼현과 관련된 조선사회의 수용층이라는 일국면에 관해서
알아보
는 일이다.
고려향악의 체계적 이해를 위하여 향악의 삼현이 고려사회에서 어떻게
전승되었는가라
는 문제를『고려명현집』(高麗名賢集)의 음악기사를 근거로 음악사학적 견지에서
검토한
결과를 이미 음악학계에 발표한 바7) 있다. 이제 본인에 의한 기존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고려사회에서의 삼현문화에 대하여 간략하게 요약하면 대략 이러하다.
고려시대 향악의 삼현은 고려사회의 문사(文士) 및 기녀(妓女)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연주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밝히 말해서, 가야금이 고려의 대표적인 문호의 한사람인
이
규보(李奎報 1168∼1241)에 의해서 애탄 되었고, 거문고도 역시 고려 문사들의 풍류생활에
서 중요한 구실을 했음을 문장노(文長老)·김지대(金之垈 1190∼1266)·정몽주(鄭夢周
1337∼1392)·윤의(尹儀)·민복사(閔僕射) 같은 선비의 경우에 의해서 확인하였다.
가야
금과 거문고가 고려선비들에 의해서 사예(四藝:碁·琴·書· )의 하나로 애용되었던
향
악기였음에 비해서, 향비파는 선비들의 풍류방(風流房)에서 필수적인 기녀들에 의해서
애
용되었음도 지적하였다. 고려향악의 이러한 삼현이 선비들의 풍류생활에서 대체로
노래
의 반주악기로 사용되었지만, 춤 반주곡이나 기악독주곡을 위해서도 세 향악기가
연주되
----------------
6) 拙稿, "高麗 鄕樂의 三絃 問題,"『東洋擧』(서울:단국대 동양학연구소,
1986),
제16집,307-327쪽, 또는 拙著,『高麗音樂史硏究』, 108-137쪽에 복간된 글 참조.
7) 자세한 학술정보는 본고의 각주 6 참조. 이 연구는 필자가 1985년 6월 3일에
탈고한『高麗名賢集』의 音樂記事 素引을 바탕으로 삼아서 이루어졌음을 여기서
밝혀두는 바임.
었으리라고 추정하였다.
고려향악의 삼현에 나타난 음악적 전통이 통일신라시대의 향악에서도
역시 중요한 위치
를 차지했던 삼현의 전통을 바탕으로 삼아서 고려사회에서 새롭게 발전시킨 결과이며,
그러한 고려의 삼현전통이 조선사회로 전승되었다고 이해되어야 함을 언급하였다.
사실
고려시대 삼현의 전통은 일반 백성들의 삶에서 계승된 음악문화라기 보다도 지식계층의
음악문화라는 사실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고려명현집』이라는 문헌사료가 고려사회의
지식층이었던 선비들에 의해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한계성은 퍼할 수 없는
일이
기도 하며, 또 조선전기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이제 조선전기 향악의
삼현
과 관련된 조선사회의 일국면을 『대동야승』의 문집과 저자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
련다.
『대동야승』은 59종의 문집을 수집하여 붙인 총서의 명칭인데, 성종 때 성현(成俔
1439
∼1504)의『용재총화』( 齋叢話)에서 시작해서 인조 때 김시양(金時讓 1581∼1643)의『배
계기문』( 溪記聞)까지 연대순으로 편찬된 총서이다.8) 대체로 숙종(1675∼1720)말에서
영조(1725∼1776)조에 편찬된 것으로 학계에 알려져 있는『대동야승』은 143종을
수록한
『광사』(廣史)나 96종을 모아놓은 『패림』(稗林)처럼 내용이 풍부하고 충실하며
대규
모적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야사 중에서 대표적인 총서의 하나로 꼽힌다. 1909년
조선
고전간행회(朝鮮古典刊行會)에서 펴낸 13책의 양장본을 대본으로 삼아서 서울대학교
규
장각본(奎章閣本)과 비교 대조하여 민족 문화 추진회가 펴낸 17권의『국역대동야승』에
포
함된 59종의 책명과 권수 및 저자의 이름을 차례대로 적으면 아래의 <표 1>과
같다.
<표 1>
『대동야승』의
문집명 및 저자명 일람표
『국역대동야승』 |
순서 |
문 집 명 |
권수 |
저 자 명 |
비 고 |
권1 |
1 |
「용재총화」(傭齋叢話) |
10 |
성현(成俔) |
|
권2 |
8 |
「오산설림초고」(五山說林草稿) |
1 |
차천락(車天絡) |
|
권3 |
13 |
「기묘록보유」(己卯錄補遺) |
2 |
안로(安로) |
|
권4 |
19 |
「석담일기」(石潭日記) |
2 |
이이(李珥) |
|
권5 |
22 |
「해동잡록」(海東雜錄) |
6 |
권별(權鼈) |
|
권6 |
23 |
「계갑일록」(癸甲日錄) |
1 |
우성전(寓性傳) |
|
권7 |
27 |
「난중잡록」(亂中雜錄) |
4 |
조경남(趙慶男) |
|
권8 |
29 |
「역대요람」(歷代要覽) |
1 |
미상 |
|
권9 |
30 |
「재조번방지」(再造蕃邦志) |
6 |
신경(申炅) |
|
권10 |
31 |
「광해조일기」(光海朝日記) |
4 |
미상 |
|
권11,12 |
32 |
「응천일록」(凝川日錄) |
7 |
미상 |
|
권13 |
33 |
「광해초상록」(光海初喪錄) |
1 |
미상 |
|
권14 |
40 |
「문소만록」(聞昭漫錄) |
1 |
윤국형(尹國馨) |
|
권15 |
51 |
「계해정사록」(癸亥靖社錄) |
1 |
미상 |
|
권16 |
53 |
「혼정편록」(混定編錄) |
9 |
윤순거(尹舜擧) |
|
권17 |
54 |
「유천차기」(柳川차記) |
1 |
한준겸(韓俊謙) |
|
----------------
8) 김두종, "대동야승 해제,"『국역대동야승』(서울:민족문화추진회, 1971),
卷1,1-5쪽.
『용재총화』( 齋叢話)의 저자 성현(成俔 1439∼1504)은 성종조에 예조판서로
있을 당
시에『악학궤범』의 편찬자로 유명한 문신이고,『필원잡기』(筆苑雜記)를 지은 서거정(徐
巨正 1420∼1488)은 세조 때 대제학(大提學)을 지낸 문신으로서 또 『동문선』(東文選)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선비이며,『추강냉화』(秋江冷話)와『사우명행록』(師友名行錄)을
펴
낸 남효온(南孝溫 1454∼1492)은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생으로서 육신전(六臣傳)을
펴낸
문인이다. 그리고『소문쇄록』(諛聞蔘錄)을 지은 조신(曺伸)은 성종(1469∼1494)때
역관
으로 명나라에 일곱번이나 다녀온 문신이고,『병진정사록』(丙辰丁巳錄)의 저자인
임보신
(任輔臣 歿1558)은 1554년(명종 9)에 암행어사와 장악원정(掌樂院正)을 지낸 바 있는
문
신이며,『패관잡기』(稗官雜記)의 어숙권(魚叔權)은 1525년(중종 20) 이문학관(吏文學官)
이라는 벼슬을 지낸 선비이다.9)
----------------
9)『韓國人名大事典』(서울:신구문화사, 1976), 363-64쪽(成俔), 335쪽(徐巨正),
216쪽(南孝溫), 884쪽(曹伸), 780쪽(任輔臣), 458쪽(魚叔權)
『오산설림초고』(五山說林草稿)를 지은 차천락(車天輅 1556∼1615)은 선조
당시에 외교
문서를 담당하여 중국에서도 동방문사(東方文士)로 알려진 유명한 선비였고,『해동악부』
(海東樂府)의 저자 심광세(沈光世 1577∼1624)는 1611년(光海君 3) 정언(正言)·수찬(修
撰)을 지냈던 선비이며,『청파극담』(靑坡劇談)의 이륙(李陸 1438∼1498)은 성종조에
대
사헌(大司憲)·병조참판의 벼슬을 지낸 문신이다.『음애일기』(陰崖日記)를 지은
이자(李
1480∼1533)는 기묘사화(己卯士禍)로 관직을 떠나 학문에만 정진한 선비였고,『해동야
언』(海東野言)의 허봉(許 1551∼1588)은 선조조에 창원부사(昌原府使)를 지낸
바 있는
선비이며,『을사전문록』(乙巳傳聞錄)의 저자 이중열(李中悅 1518∼1547)은 중종
때 이조
정랑(吏曺正郎)에 이르렀다가 을사사화(乙巳士禍) 때 화를 입었던 선비이다.10)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를 지은 김안로(金安老 1481∼1537)는 중종조에 우의정·좌
의정을 지낸 문신이고,『견한잡록』(遣閑雜錄)의 저자 심수경(沈守慶 1516∼1599)은
선조
때 우의정을 거친 문신이며, 『석담일기』(石潭日記)를 펴낸 이이(李珥 1536∼1584)는
『율곡전서』(栗谷全書)를 펴낸 유명한 성리학자이다.『기축록』(己丑錄)의 저자
황혁(黃
赫 1551∼1612)은 선조조에 우승지(右丞旨)를 지낸 문신으로 기대승(奇大升)의 문인이고,
『해동잡록』(海東雜錄)을 지은 권별(權鼈)은 권문해(權文海 1534∼1591)의 아들로서
성
리학에 밝은 선비이다.11)
위에서 언급된 사람들은『국역대동야승』권1∼권5까지에 포함된 문집의
저자들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이다. 앞에서 다섯 권에 포함된 문집의 저자만을 언급한 이유는 다음
항목
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사항이 주로 그 다섯 권에서 인용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대동야승』에 포함된 문집의 저자들이 대체로 조선전기에 유명했던
선비들이었다는 사실이고, 또 저자들 중에서 높은 벼슬을 지낸 문신이 많다는 사실이다.
성현은 성종조에 예조판서를 지냈고, 서거정은 세조 때 최초로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
이 되었으며, 이이는 선조조에 이조·형조·병조판서를 두루 지낸 바 있고, 김안로와
심
수경은 정승에 이르렀던 문신이었음이 우리의 주목을 끈다. 남효온은 성리학자 김종직
(1431∼1492)의 문하생이었고, 황혁도 성리학자 기대승(1527∼1572)의 문인이며,
이이는
이황(李滉 1501∼1570)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에 대하여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
說)을 주장했던 성리학자이다. 조신은 외국어에 능통하여 역관으로 활약했던 문신이었고,
차천락은 명나라에서 동방문사로 칭송되었던 뛰어난 문재의 선비였다. 임보신·어숙권·
심광세·이륙·이자·허봉·이중열 같은 선비들은 비록 높은 벼슬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
10)『韓國人名大事典』, 924쪽(車天輅), 418쪽(沈光世), 696-97쪽(李陸),
711쪽(李 ), 1010쪽(許 ), 732쪽(李中悅).
11)『韓國人名大事典』, 131쪽(金安老), 423쪽(沈守慶), 702-703쪽(李珥),
1071-72쪽(黃赫), 50쪽(權文海).
기묘사화·을사사화 등의 사화(士禍)로 인하여 젊은 나이에 죽었거나 벼슬을 버리고
향리에
묻혀 학문에 정진했던 선비들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대동야승』에 포함된 문집의 저자에 대하여 지금까지 논의한 바를 요컨대, 저자의
대부분
이 조선전기의 유명했던 선비들이었고, 그들 중에는 높은 벼슬을 지낸 문신들도 많이
포함
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조선전기 향악의 삼현과 관련된 조선사회의
일국면을 살펴볼 때, 궁중 밖에서 향악의 삼현과 관련해서 발달된 음악문화가 고려사회에서
삼현의 경우처럼 조선사회의 지식층 곧 상류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형성되었다고
보아
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향악의 삼현에 관계된 음악문화에 대한 연구는 조선사회의
상류
층과 관련된 음악문화연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한계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 이러
한 조선사회의 일국면과 본 연구의 한계성을 염두에 두고서 삼현의 음악문화에 대하여
하나
씩 살펴보도록 하련다.
Ⅲ.
朝鮮社會에서 演奏된 三紘의 音樂文化
고려시대 향악의 삼현 중에서 가야금이나 거문고가 선비들의 사예(四藝)의
하나로 애용
되었고, 향비파는 선비의 풍류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기녀들에 의해서 애용되었음을
앞
항목에서 개관하였다. 이러한 고려선비와 관련된 삼현의 전통이 조선사회에 그대로
전승
되었는지가 여기서 문헌적 실증작업에 의해서 검토될 것인데, 먼저 거문고에 대하여
살
펴보고, 이어서 가야금괴 비파에 대해서 검토하고자 한다.
1, 선비社會의 거문고 傳統
『대동야승』의 여러 문집에서 거문고가 어떻게 기록되었는가를 먼저 살피는
것이 순서
이겠다. 왜냐하면 거문고로 풀이되는 현금(玄琴)이라는 기록이『용재총화』( 齋叢話).
『동각잡기』(東閣雜記)·『송도기이』(松都記異) 이상 세 문헌에서만이 발견될 뿐이고,
『해동잡록』(海東雜錄)·『해동야언』(海東野言)·『청파극담』(靑坡劇談)·『견한잡록
』(遣閑雜錄)·『송와잡설』(松窩雜說)·『패관잡기」(稗官雜記)·『오산설림초고』(五山
說林草稿)·『석담일기』(石潭日記) 같은 문집에서는 거문고로 생각되는 현악기가
모두
금(琴)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12) 이제 아래에서 인용된 세 사료에 나타난 금이라는
악
기가 거문고로 풀이되어야 하는 까닭에 대해서 알아보자.
<사료 1-가> 金馹孫 ‥(中略)‥ 濯纓子與申漑之姜士浩金子獻李顆之李師聖,
迭在讀書堂,
餘力學琴, 權嚮之亦自玉翁往來學焉, 乃日, 王山岳始奏六絃,
玄鶴來舞, 一琴一鶴 也
-----------------
12) 拙著,『高廳音樂吏硏究』, 345쪽(琴) 및 358쪽(玄琴) 참조.
김일손 …(중략)… 탁영자가 신개지·강사호·김자헌·이과지·이사성과
길마들여 독서당에
있을 때, 여가에 거문고를 배웠고, 권향지도 옥당에서 왕래하면서 배웠다. 그리고
말하기를,
"왕산악이 처음 여섯 줄을 뜯을 때에 검은 학이 화서 춤을 추었는데,
한 거문고에 한 쌍의
학이었다"고 하였다.13)
<사료 1-나> 成宗始置樂院兼官, 余與伯仁耆之兼僉正, 任興兼直長,
興自少學樂, 精於絲竹,
以豪俠擅名, 其軌墅在陽川金浦之開, 亭江上, 月夜乘舟,
上自漢琴, 下堊祖江或上求下, 聲技數
妾常隨之,興自彈琴, 技塗歌而和, 見者以爲神仙中人,
성종이 비로소 장악원겸관을 두었는데, 내가 백인 기지와 더불어 첨정을
겸하고, 임흥은
직장을 겸했다. 임흥은 어려서부터 음악을 배워서 관현에 조예가 깊고 호탕하여 남자다움으
로 이름을 떨쳤다. 그의 별장이 양천과 김포 사이에 있는데, 정자를 강 위에 세워,
달밤에는
배를 타고 위로는 한강으로부터 아래로는 조강에까지 올라가고, 혹은 내려올 때 노래
잘 하는
기생과 여러 첩이 항상 따라 다녔다. 임흥이 스스로 거문고를 타고 기생이
노래에 맞추어 화답
하니, 보는 사람이 신선과 같은 사람이라 하였다.14)
<사료 1-다> 洪中樞逸童器宇卓?, 性任天眞, 不脩邊幅,
善詞賦劇飮, 無何醉則用草葉作吹笛
聲, 悲壯震 , 平居獨撫古琴, 有絃無譜, 嘗日, 吾之琴得淵明千古不傳之趣, 昔伯牙鼓琴,
唯子期知
之, 吾之琴, 淵明不生, 世無知者, 天地問奇男子也,
지중추 홍일동은 인격이 우뚝하게 뛰어나고, 성품이 천진하며,
겉치레를 아니하며, 문장에
능하 고 술을 많이 마셨다. 정신없이 취하면, 풀잎으로 젓대소리를 내는데, 소리가
비장하고
위엄이 있었다. 평상시에 혼자서 옛 거문고를 어루만지는데, 줄은 있어도 악보는
없었다. 말
하기를, "내가 도연명이 천고에 전하지 않는 풍치를 얻었다. 예전에 백아가
오현금을 연주
하니, 오직 종자기가 그 뜻을 알았는데, 나의 거문고는 도연명이 나지 않았다면,
세상에서 알
사람이 없다"고 했으니, 천지간에 이상한 남자였다.15)
탁영자(濯纓子) ·김일손(金馹孫
1464∼1474)에 관해서 언급한 <사료 1-가>는
『해동잡록』 권2에서 뽑은 사료이고, 성종 때 장악원의 직장(直長)을 지낸 임흥(任興)과
관련된 <사료 1-나>는 『용재총화』 권10에서 인용된 것이며, 홍일동(洪逸童)에
관한 <
사료 1-다>는 『필원잡기』 권1에서 인용된 사료이다. 이 세 인용문에서 우리의
관심사
는 선비들의 풍류생활과 관련된 금(琴)이 가야금이나 중국의 칠현금(七絃琴)이 아닌
거
문고로 해석되어야 하는 타당성의 검토이다.
김일손이 신개지(申漑之)·강사호(姜士浩)·김자헌(金子獻)·이과지(李顆之)
·이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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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국역대동야승』, 권5,230쪽(번역) 및『海東雜錄』, 卷2.43쪽(원문). 독자들의
편의
를 위해서 다음 각주부터 번역과원전의 출처는『국역대동야승』, 卷5.230(『海東雜錄』
卷2.43)으로 표시될것임.
14)『국역대동야승』, 권10.656(『 齋叢話』, 卷1.239).
15)『국역대동야승』, 권1.682(『筆苑雜記』, 卷1.298).
(李師聖)·권향지(權嚮之)와 독서당(讀書堂)에서 여가에 배웠다는 금(琴)은 다음의
이유
때문에 거문고로 해석되어야 합당할 듯싶다. 왜냐하면 <사료 1-가>의 뒷부분에
언급된
왕산악(王山岳)과 검은학(玄鶴)의 기사가 『삼국사기』(三國史記) 악지의 현학금(玄鶴琴)
기사16)에서 유래되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료 1-나>의 인용문에 나오는
금을 거
문고로 풀이해야 하는 까닭은 두가지 각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임흥이
기
생의 노래에 맞추어 연주했다는 금이 중국의 칠현금이나 가야금으로 보기보다는 거문고
로 해석되어야 이치에 맞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거문고와 노래의 관계에 대해서 다른
실
례를 제시하겠지만 (<사료 4> 참조), 거문고는 노래의 반주악기로 흔히 사용되었음에
유
의할 일이다. 다른 하나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배워 관현(管絃)에 조예가 깊었다는
임흥이
성종조에 장악원의 직장(直長)을 지냈음을 상기할 때, 임흥이 배운 음악이 향악기를
통해
서 익혔을 향악이라고 생각되고, 또 거문고가 향악의 관현합주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
기 때문이다. <사료 1-다>에서 비록 홍일동이 자신의 연주기량을 백아(伯牙)의
오현금
(五絃琴)과 종자기(鍾子期)의 중국고사를 인용하여 과시했지만, 그의 고금(古琴)은
중국
의 금이라기 보다는 거문고로 해석되어야 순리적이라고 생각된다. 앞서 논의된 두
사료
나 다음에 제시될 여러 사료에 의하면, 조선전기의 선비사회에서 거문고는 중국선비의
상징인 칠현금(七絃琴)처럼 조선선비의 상징으로 대단히 애용되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앞서 제시된 세 인용문에서 언급된 금을 중국의 금이나 가야금이
아니라 거문고로 해석
해야 하는 이유를 여러 각도에서 검토한 바에 의거해서, 조선전기의 선비가 자신들이
풍
류생활을 위하여 애용했다는 금이 거문고로 풀이되어도 무방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러
면 금에 대한 이러한 해석을 바탕으로 삼고서, 조선사회 선비의 거문고가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선비들에게 교습되었고, 어떠한 형태로 연주됨으로써, 조선시대 풍류방의
음악문
화를 형성했는지에 대하여 알아볼 차례이다.
위에서 인용된 <사료 1-가>에 의하면, 탁영자 김일손과 그의 친구였던
여러 선비들 이
독서당(讀書堂)에서 여가에 거문고를 배웠고, 권향지라는 선비도 옥당(玉堂) 곧 홍문관
(弘女館)에서 왕래하면서 배웠다고만 했을 뿐, 누구에게 어떻게 거문고를 배웠는지는
확
실하지 않다. 조선초기 문신 중에서 덕과 재주가 있는 사람을 뽑아서 글을 읽도록
1426
년(세종 8)에 세운 독서당에서 공부했던 신개지·강사호·김자헌·이과지·이사성
및 궁
중의 경서와 사적을 관리하고 궁중문서를 다루면서 왕의 자문에 응하던 삼사(三司)의
하
나인 홍문관에서 일하던 권향지 같은 탁영자의 친구들 모두가 과거에 급제한 젊은
선비
들이었다는 사실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젊은 선비들이 거문고를 누구에서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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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三國史記』, 卷32.6b3.
떻게 배웠는지를 성현의 『용재총화』에서 인용한 아래의 글을 근거로 살펴보도록
하자.
<사료 2> 음악에서 거문고는 가장 좋은 악기이고, 음악을 배우는 문호이다.
장님이 반이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세종에게 알려져 궁중에 출입하였다. 김자려도 또한
거문고를 잘
탔는데, 내 가 어렸을 적에 그의 연주를 듣고 그 소리를 흠모했으나,
지법을 배우지 못했
다. 오늘날 악공들의 음악에 비하면, 옛 모습을 면치 못하였다. [장악원의] 악공
김대정
이마지 권미 장춘은 모두 같은 시대의 사람들인데, 당시에 논하는 사람이 말하기률,
"김대정의 간엄한 것과 이마지외 오묘한 것은 각기 극치에 이르렀다"고
했지만, 김대정은
일찍 주살 당하여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권미와 장춘은 모두
보통의 연주자였고, 다만
이마지만 선비들의 귀여움을 받고 임금의 은총을 입어 두번이나 전악이 되었다. 내가
일찌기 희량 백인 자안 침진 이의 기채 주지와 함께 이마지에게 가서 배웠으며, 날마다
맞
아오고, 어떤 때는 자기도 하여, 듣기에 매운 익숙하였다.
[그의 연주하는]소리가 거문고의 밑바닥에서 나오는 듯하고, 술대로 줄을 켜서
내는 소음
이 없 어서, 심신이 경송해지니 참으로 절묘한 예술이었다. 이마지가 죽은 뒤에
음악만은
세상에서 성행하여, 지금은 사대부집 계집종이라도 이에 능한 사람이 있는데, 모두
이마지
의 유법을 배웠으 니, 고몽의 누습은 없다.17)
이 <사료 2>의 인용문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점은 첫째 세종(1418∼1450)
이후 성종
(1469∼1494)조까지 대략 반 세기 동안에 왕립음악기관에 소속된 악공들 중에서 거문고명
인의 기량에 대한 논평이고, 둘째는 성현(1439∼1504)과 그의 친구인 여러 선비들이
장악원
(掌樂院)의 전악(典樂)이었던 거문고명인 이마지(李 知)로부터 거문고를 배운 사실이다.
이반(李班)·김자려(金自麗)·이마지·권미(權美) ·장춘(張春)은 모두 장악원에소속된
악공
들로서 15세기의 거문고명인들이었다. 그렇지만 김자려의 거문고소리를 흠모 했던
성현이
그로부터 배우지 못했던 거문고를 나중에 장악원의 전악 이마지에게 배웠다
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현과 더불어 이마지에게서 거문고를 배웠다는 희량(希亮)·
백인(伯仁)·자안(子安)·침진(琛珍)·이의(而毅)·기채(耆蔡)·주지(籌之)라는 선비들의
본명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예조판서까지 지낸 성현의 경우로 미루어 보건대,
그들은 모두 조선초
기 전형적인 선비들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싶다.『용재총화』권10에 언급된 바에
의하면
성현의 친구들 중에서 백인은 장악원의 첨정(僉正)이라는 벼슬을 성현과
함께 지낸 바 있는
선비임18)을 상기할 때, 성현의 나머지 친구들도 모두 선비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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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玄琴於樂最善, 學樂之門戶, 有盲李班, 遇知於 世宗, 出入禁中, 有金自麗者, 亦善鼓
,
余少時聽之, 慕其音而不得指法, 今若律以伶人之榮, 則未免古態也, 伶人金大丁李
知權美
張春皆一時人, 當時論者云, 大丁之簡嚴, 知之要妙, 各至奏其極, 大丁早誅未及聽,
美春皆凡手,
惟 知爲士林所重, 至紆聖眷, 再爲典樂, 余與希亮伯仁子安琛珍而毅耆蔡籌之,
嘗往學焉,
日日激致, 或時偕宿, 聽之甚慣, 其爲努也, 如從琴底出, 無匙撥所行之跡, 心神驚悚,
眞絶藝也,
知死後其音盛行於世, 今士大夫家女僕, 亦有能之者, 皆得 知遺法, 無 朦鄙習.『국역대동야승』,
卷1.14-15(『용재총화』, 권1.561).
18)『국역대동야승』, 권1.239(『 齋叢話』, 卷10.656). 번역은 본고의<사료1-나>참조.
생각된다. 이런 선비들에게 거문고를 가르쳐 준 이마지라는 거문고명인이 어떤 종류의
음악
을 배워주었을까라는 문제는 다음의 인용문을 근거로 살펴보려고 한다.
<사료 3> 우리나라에 거문고를 타는 악사 이마지라는 이가
그 수법에 있어서 당대의 으뜸
이었다 …(중략)… 가락의 기이로운 변화가 당시의 악사들보다 출중하여 음악을 즐기는
인사
들이 다투어가며 그를 맞이하려고 서로들 쫓아다녔다. 매양 달밤이면 빈 대청에서
마음 턱
놓고 한가락 타면, 바람이 일고 물이 소용돌이 치듯하며, 하늘은 찬데 귀신의 휘파람소리와도
같아 듣는 자로 하여금 머리카락이 쭈뼛서게 하였다. 이 악사가 정신을 가다듬고
한 곡조를
타니, 구름이 가듯 냇물이 흐르듯 끊어질 듯하면서도 끊이지 않다가, 갑자기
툭 트이는가 하면
, 흘연히 닫히며 퍼지고 오구러듦이 변화무쌍하여, 좌상에 앉은 이들이 맛을 잃어
술잔을 멈추
고 귀를 기울여 정신을 빼앗기며, 우두커니 앉은 모습이 흡사 우뚝 선 나무와 같더라.
갑자기
변하여 고운 소리를 내니, 버들꽃이 나부끼듯, 꽃이 어지럽게 떨어지듯, 광경이
녹아날 듯 고은
듯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취 하고 사지가 노근하다. 또
다시 높이 올려 웅장하고 빠른 가락이
되니, 깃발은 쓰러지고 북은 올리는 듯, 백만의 병사가 일제히 날뛰듯, 기운이 분발하고,
정신이
번쩍 들며, 몸을 일으켜 춤추게 되는 것도 깨닫지 못하더라 …(중략)…
그의 신기한 곡조들은
대부분 스스로 만든 것이어서, 그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있어도 아껴 가르쳐주지
아니하였다.
어쩌다가 한 두 곡을 몰래 배운자가 있어 오늘까지 전하여 이마지의
곡조라고 하나, 세월이
흐르면 많이 변하여, 마침내 그 온전함을 잃어버렸으니, 마치 광릉산의 곡조가 전하지
않음과
같다.13)
악사 이마지(李 知)의 거문고음악에 대한 <사료 3>의 자세한 언급은
김안로(金安老1481∼
1537)의『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에서 뽑은 것이다. 이미 제시된 <사료 2>에서
볼 수 있듯
이, 성종 때 장악원의 전악(典樂)을 지낸 바 있는 악사 이마지가 성현의 거문고 선생이었음을
상기할 때, 그는 김안로보다 한 세대 앞선 사람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사료
3>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는 이마지가 연주한 거문고악곡이 김안로의 생존시에 이미 온전하게
전승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악사 이마지의 명성이나 연주기량은 <사료 3>의 첫 부분에서
김안로가
지적했듯이, 당대의 으뜸이었기 때문에, 성현과 그의 친구들이 그를
선생으로 모시고 배웠음
을 <사료 2>에서 이미 확인하였고, 또 "음악을 즐기는 인사들이 다투어
그를 쫓아다녔다"는
김안로의 기록에 동감할 수 있다. 그런데 <사료3>의 중간 부분은 이마지가
연주한 거문고악
곡의 성격을 파악하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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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國朝有琴師李馬智者手法妙一時 …(中略)… 聲調奇變. 逈絶流輩. 資音之士. 爭激競致.
每於虛堂月夜. 信手一鼓. 風起水湧. 天寒鬼嘯聽之者毛髮 然. 一日座上皆卿相貴客.
李師極
意調弄. 雲流川瀉. 續續不絶. 條開忽閤. 舒慘難定. 座上方忘味停酒. 結耳凝思. 답然如喬木.
忽流爲艶佚. 絮蕩花亂. 光景融治. 不覺怡魂醉心. 肢 弛漫. 又激爲壯迅. 旗偃鼓作.
百萬齋起.
不覺氣奮神聳. 曜身舞手…(中略)… 其異操新腔. 多自意製. 人有願學.
固 不授. 或有偸得一二
. 至今傳以爲李馬智調. 而流訛變眞. 竟失其全焉. 其廣陵散之無傳乎.『국역대동야승』,
권3.485-86 (『龍泉談寂記』, 119).
제공해주므로, 좀 더 구체적으로 그 인용부분을 검토해보자.
악사 이마지가 거문고의 한 가락을 타면, "바람이 일고, 물이 소용돌이
치듯하고, 귀신의 휘파람
소리와도 같아서, 청중의 머리카락을 쭈뼛서게 한다"는 김안로의 묘사는 너무과장된
느낌을 주
는 문학적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가 연주한 악곡은 노래의 반주음악을 기술했다고
보기 어렵게
만든다. 오히려 거문고의 독주곡을 연주하는 이마지의 연주기량을 시적인 표현으로
나타냈다고
생각되는 구절이기도 하다. 더우기 정승이 참석한 풍류방(風流房)의 어느 자리에서
그가 연주한
거문고의 한 곡조가 "좌상의 청중들에게 술맛을 잃어 술잔을
멈추게 했다"는 묘사가 더욱 그러
하다. 다시 말해서 "구름이나 시냇물이 흘러가듯이 끊어질 듯하면서도 끊이지
않다가 갑자기
툭트이기도 하고, 홀연히 닫히고 퍼지며 오구러듦이 변화무쌍하다"는 거문고가락의
묘사도 그러
하거니와, 또 고운 소리를 낼 적에는 "버들꽃이 나부끼듯하고, 꽃이 어지럽게
떨어지듯"하여 마음
을 사로잡으며, 높은 가락의 빠른 곡을 연주할 때에는 "깃발이 쓰러지고 북이
울리는 듯하고, 백만
의 병사가 일제히 날뛰는 듯하여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는 거문고가락의 음악적
변화에 대한 문학
적 기술도 모두가 거문고독주곡의 가락에 대한 문학적 표현이라는 심증을 더해 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거문고곡조의 가락에 대한 문학적 묘사로 추정되는 김안로의 글에
의해서, 이마지가 그
의 독특한 연주기량을 바탕으로 짜서 지은 새로운 독주곡을 연주했다고 보아도 좋을
듯싶다. 더우
기 인용문의 끝부분에서 "그의 신기한 거문고곡조들은 대부분 스스로 만든 것"이라는
김안로의
글이 이마지의 거문고독주곡에 대한 심증을 확고하게 만들어 준다. 그러면 악사 이마지가
성현
같은 선비들에게 고도의 연주기량을 요구하는 그런 독주곡을 가르쳤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대체로 쉬운 거문고 음악을 비전문가인 선비들에게 가르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어려운
거문고독주곡은 이마지 자신이 타거나 거문고전문가인 악공들에 의해서 전승되었고,
선비들의
풍류방에서 감상용으로 연주되었으리라고 보아야 무난할 듯하다. 비록 다음에 논할
김유(金紐)
같은 예외적인 인물도 있지만, 대개선비들에게 가르쳤을 거문고의 쉬운 곡조란 아마도
노래의
반주곡을 포함했을 것도 같은데, 이제 다음의 인용문을 검토해보자.
<사료 4> 권모씨라는 선비가 일찌기 음악을 배우는
까닭을 말하기를, "어릴때 밤중에 친구집
에 갔다가, 마침 길 옆에 있는 집에서 등잔불을 켜고 이야기하며 웃음으로, 내가
창밖의 문틈으로
들여다 보니, 한 남자가 한 여자와 함께 이불을 깔고 앉았는데, 남자는 젊고 잘 생겼고,
여자는
아름답기가 비한 데 없었다. 여자가 일어나 시렁 위에 상자를 가져다 열어 고기포와
밤을 차리고,
드디어 은그릇에 술을 데워 각각 서너잔씩 마시고는, 남자가 술대로 거문고를 탈
때, 여자가 말하
기를, '풍입송을 타십시요'하니, 남자가 술대로 줄을 고르고 천천히 타니, 소리가
아주 오묘하였다.
나는 마음 속으로 부러워 그리워하기를 마지않아, '세상에 어찌 이와 같은
사람이 있으리오. 반드
시 신선의 무리로다'하고서, 이로 말미암아 음악을 배웠는데, 먼저 풍입송을
익혀서 모든 소리에
통하고, 또한 첩을 얻어 늙을 때까지 같이 살았다"고 하였다.20)
선비 권모씨가 거문고를 배우게 된 동기에 대한 <사료 4>의 인용문은
『용재총화』권10에서
발췌한 사료이다. 이 내용 중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점은 첫째로 선비가 배운 거문고음악이
풍입송(風入松) 같은 노래의 반주곡이라는 사실이고, 둘째로 조선초기 전형 적인
선비의 풍류생활
의 일국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려시대 대표적인 향악곡의 하나인 풍입송의 악보가『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에
전하는 노래
임을21) 상기할 때, 풍입송이 성종(1469∼1494) 당시에만 해도 조선후기의 가곡처럼
거문고반주에
맞추어 노래로 불리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풍입송과 같은 향악곡의 반주에 거문고가
필수적으로
포함되었기 때문에, 선비들이 즐겨 익힌 거문고 음악이 그런 노래의 반주음악으로
보아도 좋을 것
이다. 이렇듯 거문고가 선비들의 풍류방(風流房)에서 필수적이었지만, 조선사회 선비들의
일상
생활에서도 거문고의 위치가 확고했다는 사실을 아래의 몇가지 사례를 통해서 확인해보고자
한다.
<사료 5-가> 찬성 정구와 유구
정부는 모두 대부 정양생의 아들이다. 형제가 모두 음악에
조예가 있어, 찬성은 거문고를 잘 탔고, 유후는 알지 못하는 바가 없었으며,
용모도 웅위하였다.
부인이 혹 시골에 내려가면, 유후는 집에서 운산을 바라보며 거문고를
타고, 때때로 노래불러 이
로서 낙으로 삼았다.22)
<사료 5-나> 한충의 본관은 청주이고,
자는 서경이요, 호는 송재이다. 일쩍부터 선비로서의
명망이 있었고, 중종 때 과거에 장원으로 뽑혔다. 기개가 호탕하고 개방적이며,
또한 음율을 좋아
하여 거문고를 잘 탔다.23)
<사료 5-다> 종실의 임성정은 예능에 뜻을
두어 거문고를 잘 타기로 당시에 으뜸이었다. 그
래서 세종대왕은 일찌기 말하기률, "임성정의 거문고는 독특한 가락을
지니고 있어, 다른 사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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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有士人權某, 嘗言學樂之由曰, 少時爲夜半往友家, 適路旁家張燈談笑, 予依窓外,
因隙窺見, 有一男 子, 與一女擁衾同坐, 男子年少俊逸, 女則窈도窕無雙, 女起取架上
小筐, 解筐列脯栗, 遂於銀盂煖酒, 各飮三四男取琴調弄, 女曰, 可彈風入松, 南操絃轉
柱舒舒而彈, 聲甚要妙, 女亦隨而低唱, 聲如貫珠, 予心豊 慕無己, 世間安有如此人,
必神仙曹也, 由是學樂先習風入松, 遂通衆音, 亦聚妾終老.『국역대동야승』, 권1.248
(『傭齋叢話』, 卷10.660).
21)『時用鄕樂譜』, 34a-45a. 필자가 참조한 영인본은 연세대학교 동방학연구소에서
1954년에 펴낸 것임. 국립국악원에서 1957년에 펴낸『시용향악보』의 영인본은 연세
대학교 동방학연구소에서 1954년에 펴낸 것임. 국립국악원에서 1987년에 펴낸『시용향
악보』의 영인본은『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22집, 87-91쪽 참조.
22) 鄭贊成矩留後符, 皆鄭大夫良生之子也, 而兄弟皆知樂, 贊成能鼓琴, 留後則無所不曉,
容貌雄偉, 夫人或下鄕曲, 而留後獨在家, 面對雲山, 手撫鳴絃, 時時自歌以爲樂,『국역대
동야승』, 권1.79 (『 齋叢話』, 卷3. 588).
23) 韓忠 淸州人. 字恕卿. 號松齋. 早有文名. 我 中廟朝. 擢科豪放. 又喜音律. 善彈琴.
『국역대동야승』, 권5.280 (『海東雜錄』, 卷3.53).
미칠 바가 아니다"고 하였다.24)
<사료 5-라> 신항의 본관은 고령이고, 자는 용이이다.
참판 신종호의 아들이고, 성종의 첫째
딸에게 장가들었다. 나이 겨우 7, 8세 때 이미 시률 잘 지었고, 문장은 아담하고
온건하였다. 천성
이 고상하고 결백하여, 언제나 거문고와 책으로 스스로를 즐겼다.25)
<사료 5-마> 사재선생이 황모씨에게 부친 편지는
다음과 같다. …(중략)… 듣건대, 그대의
의식과 저택이 나보다 백배라 하는데, 어찌하여 그칠줄 모르고 쓸데없는 물건을
모으는 것이오.
없을 수 없는 것은 오직 책 한 시렁, 거문고 하나, 벗 한 사람, 신 한 켤레,
잠을 청할 베게 하나,
환기시킬 창 하나, 햇볕 쬐일 마루 하나, …(이하 생략).26)
찬성 정구(鄭矩)에 관한 <사료 5-가>의 기사는 『용재총화』
권3에서 인용된 사료이 고, 한충
(韓忠 1486∼1521)에 대한 <사료 5-나>는『해동잡록』(海東雜錄) 권3에서 뽑은기사이며,
『청파극담』(靑坡劇談)에서 발췌한 임성정(任城正)의 기사가 <사료 5-다>이다.
신항(申沆
1477∼1507)에 관한 <사료 5-라>의 기사도 역시『해동잡록』 권4에서 인용된
사료이고, 사재
(思齋)선생에 대한 <사료 5-마>는『송와잡설』(松窩雜說)에서 발췌된 기사이다.
이 다섯 인용
문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점은 거문고가 공통적으로 조선사회의 선비들에 의해서
애용되었는데,
모두가 자신들의 즐거움을 거문고를 통해서 얻으려 는 선비적 삶의 자세를 보여주는
사실이다.
정양생(鄭良生)의 아들 정구가 거문고와 노래로 삶의 낙을 삼았다는 기사나
장원급제한 한충이
거문고를 즐긴 기사, 그리고 참판 신종호(申從濩 1456∼1497)의 아들 신항이 거문
고를 스스로
즐겼다는 사실이나, 청빈한 삶의 철학을 보여주는 사재선생의 경우, 모두가 조선사회의
전형적인
선비적 삶의 자세를 보여주는 실례들이고, 거문고가 그들의 삶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확고함을
발견하게 된다. 조선전기 선비사회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거문고전통은
고려사회의 선비들에 의해서
형성된 전통의 계승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한다. 그러나 거문고가 선비의 삶에
차지하는 위치가
이와 다른 양상을 보여주는 실례를 아래의 인용문에서 찾을 수 있다.
<사료 6-가> 무풍정 이총의 자는 백원이며,
태종의 증손이다. 시에 능하고 글시률 잘 쓰며,
또 거문고를 잘 탄다. 양화도에 별장을 짓고 작은 배와 어망을 가지고
항상 손수 고깃배를 저어
서 시인과 선비를 맞아 날로 시를 모은 것이 무려 천백편이나 되었다.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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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宗室任城正有志於藝, 鼓琴爲當時第一手, 世宗嘗曰, 任城之琴, 自有別調,
非他人所及也,『국역대동야승』, 권2.121(『靑坡劇談』, 545).
25) 申沆 高靈人. 字容耳. 判從濩之子. 尙我 成廟第一女. 年裳 . 己能詩.
文章雅健.
天性高潔. 常二琴書自娛.『국역대동야승』, 권5.487(『海東雜錄』,
卷4.97).
26) 思齋先生. 又有奇黃書云 …(중략)… 聞君之衣食第宅. 百倍於吾豈可更不知止.
以畜無用之物乎. 所不可闕者. 惟書一架·琴一張·友一四·履一雙·迎睡一枕·納凉一恣·
負暄一楹·熊茶一 .『국역대동야승』, 권14.182(『松窩雜錄』, 34).
27) 茂豊福正摠字百源, 太宗之曾孫, 能詩書善彈琴, 別楊花渡, 具小艇漁網,
常自剌
漁船, 激詩人客, 日致好詩, 舞慮千百篇,『국역대동야승』, 卷2.360(海東野言), 卷2.643).
<사료 6-나> 김유 자고는 말하기를,
"나는 친구를 역방하려고 하지 않으니, 내집이 족히 손
님을 모실만 하고, 나의 재산이 잔치 차리기에 족하며, 항상 꽃피는 아침이나
달뜨는 저녁에 좋은
손님과 종은 친구를 맞아 술통을 열고 술자리를 베풀어, 이마지가 타는 거문고와
도선길의 당비
파와 송전수의 향비파와 허오가 부는 젓대와 가흥란과 경천금의 노래로 황효성이
옆에서 지휘하
고, 흑은 독주하거나 합주하며, 이 때에 손님과 더불어 술잔을 서로 주고 받으며
마음껏 이야기하
고 시짓는 것이 나의 즐거움이다"라고 하였다.28)
<사료 6-다> 상공 윤자신은 윤장원공의 재종질이다.
…(중략)… 마침 장원이 참모를 쓰고
작은 마루에 나와 앉아 손으로 거문고를 희롱하며, 입으로 시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중략)…
그 관원은 다시 정색하고 말하기를, "장옥견선생이 남양부백이 되었는데,
일찍부터 가야금과
노래 잘 하는 종 다섯을 곁에 두고 매달 한 사람겐 교대로
서울에 보내, 한달씩 마음껏 놀고 오게
하였습니다. …(이하 생략)."29)
태종의 증손 무풍정 이총(李摠 歿1504)와 풍류생활에 관한
<사료 6-가>는 『해동야언』
(海東野言) 권2에서 인용한 사료이고, 김유(金紐 1420년생)의 멋진 삶을 보여주는
<사료 6-나>는『용재총화』권10에서 뽑은 기사이며, 『오산설림초고』(五山說林草稿)에
서 발췌한 상공(相公) 윤자신(尹自新 1529∼1601)의 기사에 나오는 장옥견(張玉見)선생
에
관한 기사가 <사료 6-다>이다. 첫째 인용문에서 거문고가 시인과 선비의 시회(詩會)에서도
중요한 악기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고, 남원부사 장옥견에 관한 세째 인용문은
가야금이
계집종에 의해서도 연주되었음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그런데 김유의
풍류놀이는 성종 당시
악기명인을 보여줄 뿐 아니라, 거문고와 다른 악기와의 합주 및 독주라는 연주형태를
말해주기
때문에,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여기서 먼저 풍류놀이의 주인공
김유에 대한 다음의
인용문을 검토한 후에 그가 생존했을 때의 풍류놀이에 대해서 논의를 전개하려고
한다.
<사료 7-가> 김유.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자고이며, 호는 금헌이다.
세조 때 문과에 급제하고,
또 중시와 등준시 두 과에 합격하여 이조참판이 되었다. 시 글씨 거문고를 잘하여
사람들이 삼절
이라고 지목하였다. 또 음율에도 정통했으며, 일찌기 반궁 곧 성균관 북쪽 골짜기에
쌍계재를 짓고
봄마다 벗을 맞이하여 시를 읊고 늘어지게 노래부르며 한가로이 지냈다. …(중략)…
자고가 쌍계에
서재률 짓고 거문고와 글씨로서 스스로 즐겼는데, 그 정신을 맑게하고 생각을 고요하게
하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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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金紐子固曰, 予則不欲歷訪友人, 予家足以容客, 予財足以辦宴, 每於花朝月夕,
池佳賓良朋, 開楢置酒, 李 知彈琴, 都善吉唐琵琶, 宋田守鄕琵琶, 許語吹笛, 駕鴻
輕千金唱歌, 黃孝誠從旁指揮, 或獨奏或合奏, 於是於客酌酒相酬, 縱談占聯, 此予
所樂也, 『국역대동야승』, 권1.243(『 齋叢話』, 卷10.658).
29) 尹相公自新, 尹公長源再從侄 …(中略)… 尹公一日挾風騷問於長源, 額寢帽,
出坐小軒, 手弄瑤琴, …(中略)… 其人斂容而言曰, 張先生玉見爲南陽府伯, 嘗有婢
使能琴歌者五人, 逐月送一人洛中, 使之遊樂, 盡月而返,『국역대동야승』, 권 2.13-14
(『五山說林草稿』, 500). 張玉見선생의 계집종의 琴을『국역대동야승』에서는
거문고로 번역되었으나, 필자는 그것을 伽耶琴으로 해석했는데, 그러한 해석에 대한
상론은 본고의 Ⅲ의 2항 참조.
정신을 보존하고 성정을 기르는 것은 비록 산림 속에 사는 선비라도
이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30)
<사료 7-나> 김자고는 거문고를 잘 하는 사람이다.
은갑을 주휘를 세우고 장고를 곁들여 궁
성의 몇 곡조를 연주하면, 조용히 흐르는 봄구름이 하늘에 깔린 듯하고, 호탕히 흐르는
훈풍이 들
판을 휩쓰는 듯하며, 또 문득 변하여 날리고 격함이 천둥치고 비가 쏟아져 산악을
뒤흔드는 듯하
고, 성난 물결이 천지를 박차고 솟구치는 듯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놀라서 머리카락을
뼈쭉하게 만
든다. 맑고 또렷한 가락이 끊기는 듯 이어져 한 고비를 이르면, 다시 바람이 자고
물결이 가라 앉
고 하늘이 트여 해가 비치는 듯하고, 그 옛스럽고 순박하고 담백한 맛이 대개 당우
삼대의 하 늘
에 있는 듯하다.31)
<사료 7-다> 종실 무풍정 이총의 자는
백원인데, 스스로 구로주인이라 호하였다. 마음이 척
당하여 구속받지 않았고, 진나라 때의 풍도가 있었다. 서사를 읽고 시문을 배웠으며,
음율을 알아
서 함께 그 오묘함이 극에 달했다. 참판 김유가 그의 거문고소리를 듣고 감탄하기를,
"정말로 궁
중의 목단이 맑게 갠 날 화려하게 활짝 핀 듯하다"고 하니, 유추 임흥이 말하기를,
"재상 김유는
음율을 알아듣는 귀가 있다"하였다.32)
<사료 7-라> 종실 수천부정 이정은이
날마다 시와 술 그리고 거문고와 비파로 스스로 흥겨
워하고, 시문과 음율이 백원과 이름이 같았다. 대유 김굉필의 책망을 듣고 그들과
모든 구습을 버
리고, 짐짓 속태를 꾸미고 두문불출하며 감연히 그 친구들과 끊었더니, 과연 홀로
무사히 보존하
였다. 참판 김유는 그의 거문고소리를 듣고, "솜씨가 시냇가에서 피어 있는
매화의 격조와 같다"
고 하였다.33)
시·글씨·거문고에 모두 뛰어난 재주를 가졌기 때문에 삼절(프絶)로 지목됐던
참판 김 유
(金紐 1420年生)는 세조(1455∼1468)때 등과하여 이조참판을 지냈는데, 명나라 성화
(成化 1465∼1487) 연간에 거문고에 뛰어났던 유추(有秋) 임흥(任興)·정중(正中)
이정은
(李貞恩)·백원(百源) 이총(李摠)·국문(國聞) 정자지(鄭子芝) 중에서34) 백원과
정중의 거문고를
비판한 사실을 보면, 그들보다 한 세대 앞섰던 선비로 추정된다.
김유가 선초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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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金紐 安東人. 字子固. 號琴軒我 光廟朝登第. 又擢重試. 登俊試二科. 爲吏首參判.
能詩善書能琴. 人以三絶目之. 又曉音律. 嘗於泮宮北谷. 作雙溪齋. 每春激朋賦詩.
歌自適. …(中略)… 子固構書齋于雙溪. 以琴書自娛. 其澄神靜慮. 保眞養性. 雖山林
隱逸之士. 無以過之.『국역대동야승』, 권5.177-78(『海東雜錄』, 卷2.32).
31) 金子固能琴著也. 銀甲促珠徽. 爲鼓宮聲之數引. 油油乎若春雲之敷空. 浩浩乎若薰
風之拂野. 又忽變之. 而激之. 如迅霆驟雨震蕩乎山岳. 驚濤巨浪蹴湧乎天地.
令人酸易
而毛竪. 及乎 如繹如以至於一成. 則又如風恬波定天開日曜. 而其淳古淡澹之旨. 蓋在於
唐虞三代之天矣.『국역대동야승』,귄5.170-71 (『海東雜錄』).
32) 宗室茂豊正摠子百源, 自號鷗鶩主人, 倜 不 , 有普時風, 讀書史, 學詩文, 解音律,
俱極其妙, 金參判紐聞琴聲嘆曰, 政如宮中牧丹爛慢靖天, 有秋曰金宰相有耳,『국역대동야승』,
권2.380(『海東野言』, 卷2.653).
33) 宗室秀泉副正貞恩, 日以詩酒琴琶自娛, 時文音律, 與百源齋名, 聞大猷責我, 盡葉舊習,
故作俗態, 閉門不出, 不敢與親故通, 果獨保參判金紐聞琴嘆曰, 手 政如潤邊梅花格,『국역
대동야승』,권2.349-50 (『海東野言』, 卷2.639).
34)『국역대동야승』, 권2.350(『海東野言』, 卷2.639),
비들 중에서 특히 거문고명인의 한 사람이었음을 <사료 7-다>에서 "궁중의
목단이 맑게 갠 날
화려하게 활짝 핀 듯하다"고 백원의 거문고소리에 대한
비판이나 <사료 7-라>에서 정중의
거문고소리에 대해서 "시냇가에 피어 있는 매화의 격조와 같다"는 그의
예리한 비판을 근거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더우기 조준(趙浚)이『금헌기』(琴軒記)에서 인용하여 『해동잡록』(海東雜錄)에
기록한
<사료 7-나>의 기사는 김유가 연주한 거문고음악의 성격에 대하여 알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주는 귀중한 사료이다. 장고반주에 맞추어 김유가 연주한 거문고음악에 관해서, "조용히
흐르는
봄구름이 하늘에 깔린 듯하고, 호탕히 흐르는 훈풍이 들판을 휩쓰는 듯하고,
성난 물결이 천지를
박차고 솟구치는 듯하여, 듣는 이의 머리카락을 뼈쭉하게
만든다"는 거문고가락의 묘사가 좀
과장된 듯한 문학적 표현이라고 하겠다. 그렇지만 김유의 거문고음악에 대한 그런
묘사는 앞서
제시한 <사료 3>에서 악사 이마지의 거문고가락에 관한 문학적 묘사를 상기시키므로,
그의
거문고음악은 노래의 반주음악이라기 보다는 거문고독주곡일 가능성을 높여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리가 그러하다면, 김유 같은 선비 출신의 거문고명인이 악사 이마지 같은
악공 출신의
거문고명인에게서 독주곡을 배워서 연주했다고 보아야 타당할 것이다.
이렇듯 거문고명인의
경지에 이른 참판 김유가 생존시에 음악인들과 즐긴 풍류놀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료 6-나>의
기사에 대하여 상론할 차례이다.
다음 항목에서 가야금과 비파의 논의 때 제시되겠지만, 김유의 풍류놀이에
참여한 이마 지(李 知)
·도선길(都善吉)·송전수(宋田守)·허오(許吾)·가홍란(駕鴻 )·경천금(輕千金)·황효성(黃孝誠)은
모두
성종(1469∼1494) 때 풍류방(風流房)에서 유명했던 음악인 들이었다.35)이마지의
거문고에 대해서
는 이미 앞에서 상론한 바 있고, 가홍란과 경천금은 모두 노래를 잘 불렀던 기녀
곧 가기(歌妓)였음
이 분명하다. 도선길은 당비파의 명수였고, 향비파의 명수였던 송전수는 그의 아버지였던
전악(典
樂) 송태평(宋太平)의 향비파 기법을 전수하였다.
송전수의 본명은 송천수(宋天守)였는데, 의영고(義盈庫)의 종이었으나, 세조가 조카를
밀어내고
등극할 때 조그마한 공을 세워서 원종공신(原從功臣)으로 되어 천인의 신분에서 벗어나
자유스럽게
풍류활동을 할 수 있었던 음악인이었다.36) 장악원(掌樂院)의 악공
허오는 세조조에 이미 젓대의
명수로 알려졌기 때문에, 세조의 명을 받들어 그가 젓대로 계면조(界面調)곡을 연주하면
듣는 이가
모두 슬퍼했다는 기록37)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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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이들에 관한 사료의 번역 및 학술정보는 본고의 <사료 12-가> 및 각주
62 참조.
36) 『世祖實錄』, 卷5.2b4(2.88). 괄호 안에 있는 숫자는 번역본의『세조실록』卷2의
88쪽을 의미함. 이하같음.
37) 『世祖實錄』, 卷1.1b8(1.10).
보아서 대단한 젓대의 명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악공 허오도 세조의 등극시에
작은 공을
세운 원종공신의 한 사람이었으므로,38) 송전수처럼 그도 천인의 신분에서 해방되어
자유스럽게
젓대의 명수로 활약할 수 있었으며, 또 김유의 풍류놀이에도 초청되었다고
이해되는 바이다.
전악 황효성은 본래 허오처럼 의영고의 종이었는데, 세조의 등극 때에 작은 공을
세워서 원종
공신의 한 사람으로 되어 노적(奴籍)에서 풀려나 허오나 송전수처럼 자유스러운 몸으로
풍류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음악인이었고,39) 또 김유의 풍류놀이에도 함께 동참하여 음악활동을
전개
할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향비파의 명수 송전수, 젓대의 명수 허오, 음율에
밝았던 황효
성, 이 세 음악인은 비록 장악원 소속의 전악 또는 악공들이었지만, 모두가 공통적으로
세조가
등극할 당시에 원종공신의 대열에 올라서 천인의 신분에서 해방된 자유스러운 음악인
들이었음
을 확인하였고, 이들이 성종 당시에도 김유의 풍류놀이에 참여하여 선비들과 함께
풍류활동을
전개하면서 어울렸다고 이해하였다.
『대동야승』에 전하는 사료를 근거로 조선전기 향악의 삼현 가운데 거문고의 전통에
대하여
지금까지 살펴본 바를 대략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전기 선비사회의
풍류문화에서
거문고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확고부동했음을 여러가지 실례를 통하여 알아보았다.
선비들의
문집에서 거문고가 현금으로 기록되기도 했으나, 대체로 금(琴)이라고도
기록되었기 때문에,
그런 금은 가야금이나 중국의 칠현금으로 풀이될 수 없고,
거문고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먼저 밝혔다. 고려사회 문사들의 경우처럼
거문고가 조선전기 선비사회에서 필수적인 사예(國藝:
碁·琴·書· )나 육예(六藝:
禮·樂·射 ·御·書·數)의 하나로 취급되었으며, 성종 당시 젊은 선비들은
거문고를 악사 이마지처럼 유명한 명인을 직접 모셔다가 배우거나 찾아가서 배웠음을
확인하였다.
이렇게 선비들이 배운 거문고음악이 대체로 풍입송(風入松) 같은
노래의 반주음악이었으리라고
추정되었지만, 참판 김유같은 거문고명인은 거문고독주곡을 익혀서 연주했음도 보았다.
김일손·
성현·임흥·이총·이정은·정주·한충·임성정·신항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비들이
거문고음악을 통해서
스스로 심신을 다스리고 삶의 즐거움을 누리기도 했으나, 도선길·송전수·허오·황효성
같은 그
당시의 명인들과 더불어 풍류놀이에 어울려 호탕한 풍류생활을 즐기기도
했음을 김유의 경우를
근거로 알아 보았다. 향악 삼현의 이러한 거문고 전통이 조선전기에 갑자기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고려시대 선비사회의 거문고전통에서 전승되어 발전시킨 결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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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世宗實錄』, 卷39.15b2(9.349)
39) 『世宗實錄』, 卷2.68a3(1.246) 및 卷5.2b3(2.87).
2. 伽耶琴과 琵琶의 傳統
조선전기 선비사회의 사예나 육예의 하나였던 거문고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대동야승』
의 문집에서 대체로 금(琴)으로 기록되었음을 점검하였다. 선비와 관련된 기사의
금이 거문고로
해석됨은 당연시될 수 있지만, 기녀와 관계된 기사의 금도 모두 거문고로 풀이되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해서 먼저 아래의 인용문을 중심으로 검토해보아야 순서이겠다.
왜냐하면 가야금도
조선사회의 문사들에 의해서 금이라고 표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사료 8-가>
중종조에 명기 상림춘이 있었는데 가야금을 잘 탔다. 삼괴당 참판 신종호
가 돌 보아 주어, 그 집이 종루 곁에 있었다. …(중략)… 그후 판부사 정사룡이
7언 율시를 지어 주
었고, 우상 정순봉·영상 홍언필·우상 성세창·이상 김안국·이상 신광한 여러 공이
연이어 화답 하니,
드디어 시첩이 되었다.40)
<사료 8-나> 서울에서 이름난 정원이 하나둘이 아니지마는,
특히 이형정의 세심정은 가장 경치
가 좋다. …(중략)… 주인 이형성은 자못 시를 좋아하여 매양 시객을 맞이하여 시를
읊고 감 상하므
로, 나도 누차 가서 구경한 일이 있었다. …(중략)… 임진년 이른 가을에 내가 어느 친구의 집에
가니,
그 자리에 이형성의 계집종이 가야금을 타고 있으므로, 내가 절귀 한 수를 지어
계집 종에게 주며 그
주인 이형성에게 전하라고 하였다. 그 시에, "가야금소리 들을 만하니, 타는
여자 누구인가. 스스로
세심대의 하인이라고 말하네. 만 그루 살구꽃 피기를 기다려, 술병 갖고 봄놀이 감세"라고
하였으나,
그후 병란으로 세심대의 아름다운 경치도 다시는 감상하지 못했다.41)
명기 상림춘(上林春)에 대한 <사료 8-가>와 이형성(李亨成)의
계집종에 관련된 <사료 8-나>는
모두『한잡록』(遣閑雜錄)에서 인용한 기사이다. 명기 상림춘의 금(琴)과 이형성의
계집종이 연주
한 금이 모두『국역대동야승』에서 거문고로 번역되었지만, 그 금이 가야금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근거를 먼저 제시하고, 이어서 명기 상림춘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위의 두 사료에 나오는 금(琴)을 거문고가 아닌 가야금으로 해석할 수
있는 첫째 근거는 고려시대
에도 이미 가야금을 금이라고 기록한 증거를『고려명현집』(高麗名賢集)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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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中廟朝. 有名妓上林春. 善琴. 三魁堂申參判從濩眷之. 其安在鍾家傍. …(中略)…
厥後鄭判府事士龍作七言律詩贈之. 瑯右相順朋洪領相彦弼成右相世昌金二相安國申二
相光漢諸公連和之.遂成拒軸『국역대동야승』, 권3.542 (『遣閑雜錄』,130). 名妓
上林春의
琴이『국역대동야승』에서 거문고로 번역되었으나, 필자는 그 琴을 伽倻琴으로 해석하여
본고의 인용문에 제시함.
41) 京城中名園非止一二. 而李亨成洗心亭最勝. …(中略)… 李公頗知作詩. 每客 賞.
余亦尸往.
…(中略)… 壬辰初春. 余到友人家. 見李公婢彈琴者在席. 余題一絶付婢. 使呈業主曰.
彈琴可聽
誰家女. 自說洗心臺下人. 要待萬株山杏發. 爲携壺酒去尋春. 其後仍遭兵亂. 臺之勝不復賞矣.
『국역대동야승』, 권3.585(『遣閑雜錄』,141). 李亨成의 계집종이 연주한 琴도『국역대동야승』
에는 거문고로 번역되었으나, 필자는 그 琴도 伽耶琴으로 해석하여 본고의 인용문에
제시함.
찾아서 정리하여 발표된 바가 있기 때문이다.42) 둘째로 조선시대 기생 중에서 가야금을
연주한
여기 곧 가야금기(伽耶琴妓)나 해금을 연주한 해금기(奚琴妓)라는 명칭이『연산군일기』(燕山君
日記)에서 발견되지만,43) 본인이 조사한 바에 의거해서 말하자면, 거문고를 연주한
현금기(玄琴
妓)는『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보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 수 있다.
세째로 꼽을 수 있는 이유는 거문고의 악기구조와 연주기법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서,
기녀들이
거문고를 연수하기에는 가야금이나 해금보다도 매우 힘든 현악기라는 사실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 까닭을 들자면, 조선전기의 선비사회에서 애용되던 거문고가 천인 출신의 기녀들에게
연주
하도록 허락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네가지 이유가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면,
기녀와 관련된 기사에 보이는 금이 거문고가 아닌 가야금으로
해석되어도 큰 잘못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사료 9-가> 전악 김복과 악공 정옥경이 더욱 북을 잘 쳐서
당시에 제일수가 되었고, 기생 상림춘
이 또한 거의 이에 가까웠다.44)
<사료 9-나> 옛날에 천한 여자가 시인을 만나서 불후의 이름을
남긴 사람이 참으로 많았다.
황상랑은 두자미에게, 유기는 이의산에게, 상부는 백낙천에게, 국향은 노직에게가
그것이다. 풍류
의 한 기이한 일이며, 네 여자에게 큰 다행이 아니겠는가. 근래에 서울기생
상림춘이 있었는데,
가야금을 잘 타기로 한 때 이름을 날렸다. …(중략)… 가정연간에 이르러 기생의
나이 이미 70이
넘었다. …(중략)… 정호음이 율시 한수를 써주었는데, 그 짤막한 서문에 이르기를,
"가야금에 능
한 기생 상림춘의 나이 73세인데, 그 기능은 쇠하지 않았으나, 옛 일을 느끼고
슬퍼하여 매양 가
야금줄을 튕기다 놓고 눈물을 떨어 뜨리니, 소리와 곡조가 원망하는 것이 많다.
매양 와서 시를
구하여 이름을 죽은 뒤에 남기고자 하니, 그 굳건한 간청을 불쌍히 여기어
한 율시를 써준다"하
였다. 그 율시에 말하기률, "열세살에 의란조를 배워 얻어서, 법부의
총중에서 기예가 이루어졌다.
귀족들 두루 노는 사람과 사귀어 친밀한 자리를 연하였고, 또 궁중 지적에
통하여 새로운 소리를
아뢰었다. 아릿다운 꾀꼬리 노래가 비 지난 뒤에 꽃 사이에 미끄럽고, 가는
흐름소리가 밤 들어서
시내바닥에서 운다. 재조는 마칭내 백사마가 부끄러우니, 상부가 어찌 능히
아름다운 이름을 길이
전하리"하였다.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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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拙著,『高麗音樂史硏究』, 116-19쪽.
43)『燕山君日記』, 卷50.2b14(伽倻琴妓) 및 卷50.2b8과 2b13-14(奚琴妓).
44) 典樂金福樂工鄭玉京尤善鼓, 爲當時第一手, 有妓上林春, 亦寢近之.『국역대동야승』,
권1.15(『 齋叢話』, 卷1.561).
45) 古之賤婦, 遇詩人而垂名不 者, 固多有之, 黃四娘之於子美, 柳妓之於義山, 商婦之勢樂
天, 國香之於魯直是也, 豈非風流一奇事而爲四婦之大幸也, 近世有京妓上林春, 以能琴擅一時,
…(中略)… 至嘉靖年間, 妓巳年過七十, …(中略)… 鄭湖陰乃題一律, 妓小引曰, 琴妓上林春,
年七十二, 有其伎不襄感傷舊事, 輒故撥隕淚, 故聲調多怨, 每來乞詩, 欲留名身後,
憐其堅모懇,
爲書一律云, 其詩日, 十三學得기 藺操, 法部叢中見藝遍接貴遊連密席,
又通官籍奏新聲, 嬌鶯過
雨花間滑, 細溜侵宵澗底鳴, 才調終 白司馬, 豈能商婦壽毒佳名,『국역대동야승』,
권1.514-15
(『稗宮雜記』, 卷4.768).
명기 상림춘에 관한 <사료 9-가>는『용재총화』 권1에서 뽑은
사료이고, 서울기생 상림춘의
노년기를 기록한 <사료 9-나>는『패관잡기』(稗官雜記)에서 발췌한 인용문이다.
두 인용문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점은 조선전기 명기의 한 사람인 상림춘의 경우를
통해서
선비사회와 기녀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상림춘이 명나라 세종의 가정(壽靖
1522∼
1566)연간 곧 조선왕조의 중종(1506∼1544)과 명종(1545∼1567)때 이미 70세가 넘었으니,
한창
꽃피었을 시절은 성종조(1469∼1494)말이나 연산조(1494∼1506)시절로 추정된다.
이를 뒷바침
하는 문헌이『연산군일기』인데, 상림춘은 1504년(연산군 10)당시에 광한선(廣寒仙)·완산월
(完山月)과 더불어 영기(領妓)로 활약했고,46) 그 이듬해 (1505년)에 가흥청(假興淸)으로
선발
되었음이47) 확인되는 바이다.
연산군 말기에 가흥청으로 뽑혔던 상림춘은 중종반정 이후 선비들과
어울리면서 유명한 기생
으로 선비사회에 등장하였으니, 이 사실이 <사료 8-가>에서 입증된다. 곧 가야금과
북에 재주를
지녔던 상림춘은 성종 때 참판 신종호(申從濩 1456∼1497)의 보살핌을
받았고, 나중에 중종조에
이르러 판부사(判府使) 정사룡(鄭士龍 1491∼1570)
·우상(右相) 정순붕(鄭順朋 1484∼1548) ·
영상(領相) 홍언필(洪彦弼 1476∼1549) ·우상 성세창(成世昌 1481∼1548)·이상(二相)
김안국
(金安國 1478∼1543) · 이상 신광한(申光漢 1484∼1555)등과 같은 고위 관리들과 풍류활동을
하면서 명기로서 전성기를 맞았다고 하겠다. 조선전기의 기녀 이외 가야금명인들에
대한 다음의
사료를 근거로 알아보도록 하자.
<사료 10-가> 가야금은 황귀존이라는 사람이 잘 탄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 듣지 못했으며, 또 김
복산이 타는 것을 듣고 그 당시 탄복하였는데, 이제 와서 보니 역시 매우 질박하다.
요즘 노녀소사
가 공후의 집에서 쫓겨나와 비로소 그 소리를 퍼뜨렸는데, 그 소리가 오묘하여 사람들이
대적하지
못하였고, 이마지도 옷섶을 여미고 자기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지금은 정범이
장님 가운데서
가장 잘 탄다고 세상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세종조에 허오계란 사람이 있었고,
이승련 서
익성이 있었다. 이승련은 세조에게 알려져 군직을 배수하였고, 서익성은 일본에 가서
죽었다. 지금
김도치라는 사람이 있는데, 나이가 8O을 넘었는데도 소리가 약하지 아니하여 거벽
아쟁으로 추대
하였다. 옛날에 김소재라는 사람이 이것을 잘했는데, 역시 일본에서 죽었다. 그 뒤로는
오랫동안
폐절되었었는데, 금상께서 풍류에 뜻을 두어 이를 가르치시므로 잘하는 사람들이
연달아 나오고
있다.48)
<사료 10-나> 청파에 부자 선비였던 심씨와 유씨 두 사람이 살았는데,
날마다 기생들 속에서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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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燕山君日記』, 卷54.22a11(7.541).
47) 『燕山君日記』, 卷57.26b13(8.275).
48) 伽耶琴則有黃貴存者善彈, 余未及聽, 又聽金卜山之彈, 當時服鷹而不能巳,
以今觀之, 則亦太質直也, 近有老女召史者, 自公侯家謫出, 始播其音於外, 其音要妙,
人無與敵, 知斂 自以爲不能及, 今有鄭凡者, 盲中之最善彈, 膾炙於世大矣, 世宗朝有許
吾繼, 有李勝連徐益成, 勝連遇知於, 世祖, 拜軍職, 益成往日本而死, 今有金都致,
年過八十,
而聲猶不衰, 推爲巨擘牙箏, 昔有金小材者能之, 而亦死於日本, 其後廢絶巳久,
今 上留意敎之
, 能者栢繼而出.『국역대동야승』, 권1.15(『 齋叢話』, 卷1.561).
에 빠져 살았다. 하루는 친한 벗 두어 명이 집에 모여 술을 마셨는데, 심씨에게는
노래와 춤을 잘
하는 접연화라는 첩과 가야금 솜씨가 당시에 일인자였던 김복산이라는 장님이 있었다.
그래서 이
들을 불러 고아한 가야금과 청아한 노래로 무릎을 맞대어 서로 부르고 밟고 하며
정회가 사무치도
록 흡족하였다.49)
<사료 10-다> 최유희의 딸은 가야금에 능숙했는데, 정승 한치형이
끌어서 구사비로 삼고 가까이
하였다. 연산군이 여자를 뽑을 때가 되어 풍원위와 추천을 다투었는데, 지신사 구수영이
먼저 빼앗
아 궁중에 바치어, 임금이 사랑하여 숙의로봉하였다.50)
<사료 10-라> 또는 여악사 조이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가야금
타는 솜씨가 기묘하여 이마지와
동시대에 살면서 각각 그 기술에 극치률 이루었으므로, 나라에서는 악사의 명수로
이 두 사람을
일컬었다고 한다.51)
<사료 10-마> 악공 엄수는 나이가 70세인데, 가야금이 온 나라에서 명수요,
또 음율도 잘 터득
하였다. 처음에 진랑을 보더니 감탄하기를, "선녀로구나"하였다. 노래소리를
듣더니 자기도 모르게
놀라 일어나며 말하기를, "이것은 동부의 여운이로사. 세상에 어질 이런 곡조가
있으랴"하였다.52)
성종 당시의 가야금명인에 대한 <사료 10-가>와 <사료 10-나>는
모두 『용재총화』 권1과
권10에서 인용된 기사이고, 가야금에 능숙한 최유회(崔有淮)의 딸에 관한 <사료
10-다>는『해동
야언』(海東野言) 권3에서 뽑은 사료이며, 여악사 조이개(曹伊介)를 언급한 <사료
10-라>는『용천
담적기』(龍泉談寂記)에서 발췌한 글이고, 악공 엄수(嚴守)와 여기 진랑(眞娘)에
대한 <사료 10-마>
는『송도기이』(松都記異)에서 인용한 기사이다. 위의 네 인용문에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특징은
가야금이 조선사회의 선비들에 의해서 연주되었음을 하나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려시대만 해도 삼현의 하나인 가야금이 선비에 의해서 거문고와 마찬가지로 사예(四藝)의
하나로
애용되었다는 사실을 앞에서 지적하였다. 그러나 조선초기에 이르러 그
사정이 바뀌게 되었다는 사실
을 위의 네 인용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일이다.
<사료 10-가>에 언급된 황귀존(黃貴存)·김복산(金卜山)·정범(鄭凡)·허오계(許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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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靑坡有沈柳兩生, 皆豪富士族, 一 醉於粉黛間, 一日親朋數, 人會飮沈家,
沈有妾曰蝶戀花者,
善歌舞, 有盲人金卜山者, 善彈伽耶琴, 妙手一時無此, 亦
激而致之, 雅琴淸唱, 促膝相酬, 情懷暢洽.『국역대동야승』, 권1.129 (『傭齋叢話』,
卷5.608).
50) 崔有淮之女, 能伽耶琴, 韓相致亨引爲史婢幸之, 及廢王採女, 豊原 爭薦,
而具知事壽永先
而納之宮, 廢王寵愛封淑儀.『국역대동야승』, 권2.389 (『海東野言』
, 卷3.656).
51) 又有女師名曹伊介者妙於 伽耶今. 與馬智同時. 而各極其至. 國朝工師推此兩人云
.『국역대동야승』, 권3.456 (『龍泉談寂記』, 119).
52) 以樂工嚴守年七十伽耶琴爲通國妙手. 又善解音律. 始見眞娘嘆曰仙女也. 及聞歌聲.
不覺警起日此洞府餘韻. 世間寧有此調.『국역대동야승』, 권17.337(『松都記異』,
71).
53) 拙著,『高麗音樂史硏究』, 115-24쪽 참조.
繼)·이승련(李勝連)·서익성(徐益成)·김도치(金都致)가 모두 가야금명인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들이 선비라는 단서를 찾을 수 없으므로, 모두가 악공
출신의 명인들으로 보인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사료
10-나>의 김복산이라는 장님이나 <사료 10-다>에서 연산조에 숙의(淑儀)가
된 최유회의 딸, 및 <사료 10-라>에서 언급된 이마지라는 거문고명인과 쌍벽을
이룬 여악사 조이개나,
<사료 10-마>에 보이는 가야금의 명수 엄수(嚴守)가
모두 조선사회에서 천인 출신의 기녀나 악공
들이었지, 선비 출신의 가야금명인이 그 사료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조선사회의
선비들에게 이렇듯 가야금이 거문고처럼 사예나 육예(六藝)의 하나로
애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고려
삼현의 전통이 조선초기에 이르러 역사적인 변천과정을 거쳤음을 입증해주는 문헌적
증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다음으로 삼현의 하나인 비파에 대한 다음의 인용문을 검토할
순서이다.
<사료 11-가> 부윤 허계는 곧 허척의 아들이고, 나의 외조부
한산공의 아버지시다. 문장에 능하고
비파를 잘 탔다. 풍덕 농막에 은거하면서
항상 소를 타고 도롱이에 갈삿갓을 쓰고 낚시를 낙으로
삼았다. 성종이 여러번 불러 승지 부제학 등의 벼슬을 주었으나, 3년을 머물러 있는
일이 없었다.54)
<사료 11-나> 세종 때 군신이 왕에게 양녕대군의 허물을
논박하기를,…(중략)… 간소한 무 리들과
어울려 가로상에서 비파를 타며
환락합니다. 또 매일밤 이오방과 이법화 등을 불러들여서 담장을
넘어 궁에 들어가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잡희를 하며, 몸소 그 기예를 본받아서 못할
노릇이 없습니다.
55)
<사료 11-다> 우리 이웃에 동계에서 온 함북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젓대도 좀 불줄 알았고,
재담과 광대놀이를 잘했다. …(중략)… 비파와
거문고 소리도 쟁쟁하게 냈으며, 또한 음절에 능해서,
매양 궁궐에 들어가 상을
받았다.56)
부윤 허계(許誡 歿 1502)에 대한 <사료 11-가>는『병진정사록』(丙辰丁巳錄)에서
발췌된 인용
문이고, 양녕대군(讓寧大君 1394∼1462)의 호탕한 생활에 대한 <사료 11-나>는『해동야언』
(海東野言)에서 뽑은 기사이며, 동계(東界)에서 온 함북간(咸北間)의 재주에 대해서
언급한
<사료 11-다>는『용재총화』 권5에서 인용된 사료이다. 위의 세
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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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許府尹 誡卽倜之子, 而我外祖韓山公之父也, 能文章, 善彈琵琶, 退居豊德村墅,
嘗騎牛衰衣蒻笠, 以釣魚爲樂, 成廟朝累召, 爲承旨副提學等職, 然未嘗終三年淹也.
『국역대동야승』, 권1.406(『丙辰丁巳錄』, 723).
55) 英廟時, 群臣上論讓寧大君之罪過曰, …(中略)… 與險小之徒, 扶彈彈燈爲戱,
又月夜踰墻而出, 與奸小之輩, 彈琵琶遊街上爲 , 又每夜召李五方李法華等踰墻入宮
達夕 飮雜戱, 親效其伎, 無所不至,『국역대동야승』, 권2.284(『海東野言』,卷2.613).
56) 吾隣有咸北間者, 自東界出來, 稍知吹笛, 善談諧倡優之戱, …(中略)… 至如琵琶琴
瑟之聲, ? 發口咸中節奏, 每入內庭, 多受賁賜,『국역대동야승』, 권1.130 (『傭齋叢話』,
卷5.608).
에서 우리의 관심사는 무엇보다도 비파가 조선전기의 선비사회에서 애용된 현악기의
하나였다는
사실이다.
허척(許倜)의 아들 허계가 성종 때 전형적인 선비의 한 사람으로서 비파를
연주하면서 삶의 낙으
로 삼았다는 사실이나, 태종의 맏아들 양녕대군이 이오방(李五方)과 이법화(李法華)
같은 시정잡
배57)와 어울려 비파를 탔다는 사실은 조선전기의 선비사회에서 비파가 거문고보다는
좀 덜 인기
였지만 선비들에 의해서 애용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거문고 대신에 비파를
애용한 선비의
실례를 우리는 앞서 이미 제시한 <사료 7-라>의 인용문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곧 종실의 수천부정
(秀泉副正) 이정은(李貞恩)이 날마다 시와 술 그리고 거문고와 비파로 스스로 흥겨워했는데,
그의
시문과 음율이 백원(百源) 임흥(任興)과 이름이 같았다는 사실이58) 바로
그것이다. 이렇듯 비파가
거문고처럼 조선사회의 선비들에 의해서 애용된 사실은
고려사회의 기녀들에 의해서 애용됐던
비파의 전통이 조선초기에 이르러 변천되었음을 입증해 준다고 하겠다. 그런데 조선사회의
선비
들이 좋아 한 비파가 어떤 종류의 비파인지가 위의 네 사료에 언급되지 않았음에
유의해야 한다.
비파의 종류가 고려시대부터 두가지였음은『고려사』악지에 분명히 나누어서
기록되어 있는데,
그 악지에 두 비파의 명칭이 확실히 언급되지 않았고, 다만
줄의 숫자만으로 구분되었을 뿐이다.
59) 밝히 말해서, 두가지 모두가 비파라는 명칭 아래 당악에 쓰인 비파는 네줄이고,
향악에 사용된
비파는 다섯 줄이라고만 기록되었을 따름이다. 그러나『고려사』식화지(食貨志)에
의하면, 향비파
업사(鄕琵琶業師)와 당비파(唐琵琶)업사의 명칭이 사용된 점으로 미루어 보건대,60)
고려시대부터
향비파와 당비파의 명칭상 구분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두
종류의 비파가 명칭상으로 뚜렷이
구분되어 사용된 시기는 조선초기에 이르러서였음을
우리는『태조실록』(太祖實錄) 등의『조선
왕조실록』및『악학궤범』(樂學軌範)에서 확인할 수 있다.61) 조선전기 향비파와
당비파의 이러한
지식을 상기하면서, 다음의 인용문을 검토하도록 하자.
<사료 12-가> 향비파도 역시 당비파를 모방한 것으로, 괘가 있음은 거문고와
같은데, 배우는
사람들이 줄을 고르고 술대로 튕기는 것을 어렵게 여기니, 잘타지
못하면 들을 수가 없다.
전악 송태평
----------------
57) 『太宗實錄』, 卷33.20a 2-5(7.336).
58) 『국역대동야승』, 권2.349-50 (『海東野言』, 卷2.639). 번역은 본고의
<사료7-라>, 원문은 각주 33 참조.
57) 唐樂에 쓰인 琵琶는『高麗史』, 卷71.la8(6.528), 鄕樂에 사용된 琵琶는
같은책, 卷71.30b9(6.637)참조.
60) 『高麗史』, 卷80.15b2(7.413).
61) 본고의 각주 4에 제시된 "朝鮮王朝實錄 音樂記事 索引( I -Ⅳ)" 중에서
唐琵琶
및 鄕琵琶 항의 출처 참조. 『樂學軌範』, 卷7.4bl-7b7(唐琵琶) 및 卷7.21a-23b10(鄕琵琶).
이 잘 탔는데, 그 타는 법을 배운 아들 송전수는 더욱 절묘하였다. 내가 어렸을
때 형님댁에서 그
소리를 들었는데, 마고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 각아 연이어 듣고 싶고
싫증이 나지 않았으나,
도선길에 비하여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송전수 이후로는 오직 도선길이
송태평에 가까웠을 뿐
그 밖의 사람은 미치지 못하였고, 지금은 이것을 능히 하는 사람이 없다. 당비파에는
역시 송전수
가 제일수인데, 도선길이 그와 더불어 이름을 가지런히 하였다. 요즘은 능숙한
악공이 많이 있는
데, 선비와 서인이 음악을 배울 때에 반드시 비파를 먼저 한다. 그러나 아주
뛰어난 사람은 없고,
다만 김신번이라는 사람이 도선길의 지법을 모두 배워 호종함에 있어서는 도선길보다
나으니, 역
시 지금의 제일수라 할 것이다.62)
<사료 12-나> 김유 자고는 말하기를, "나는
친구를 역방하려고 하지 않으니, 내집이 족히 손
님을 모실만하고, 나의 재산이 잔치차리기에 족하여, 항상 꽃피는아침이나
달뜨는 저녁에 좋은 손
님과 좋은 친구를 맞아 술통을 열고 술자리를 베풀어, 이마지가 타는 거문고와
도선길의 당비파
와 송전수의 향비파와 허오가 부는 젓대와 가홍란과 경천금의 노래로 황효성이
옆에서 지휘하고
흑은 독주하거나 합주하며, 이 때에 손님과 더불어 술잔을 서로 수고 받으며
마음껏 이야기하고
시짓는 것이 나의 즐거움이다" 하였다.63)
향비파명인과 당비파명인에 관한 <사료 12-가>와 참판
김유의 풍류놀이에 대한 <사료 12-나>
는 모두 『용재총화』 권1과 권10에서 인용된 기사이다. 두 인용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첫째 선비나 서인이 음악을 배울 때 반드시 비파를 먼저 배운다는 성현의 언급이고,
둘째는 당비
파에 비해서 향비파를 제대로 연주하는 명인이 성종(1469∼1495) 당시에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사실이며, 세째로 당비파가 향비파·거문고·젓대 같은 향악기와 더불어
연주되었다는 점이다.
선비나 서인이 풍류생활의 첫걸음을 비파로 시작해서 배운다는 성현의
언급에서 그 비파가 향비
파인지 당비파인지 문맥상으로 분명하지 않지만, 당비파로 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왜냐하면
첫째 향비파는 거문고처럼 술대로 연주해야 하므로 잘타지 못하면,들을
수 없다는 성현의 언급에서,
당비파가 상대적으로 배우기 쉽다는 의미가 포함되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고, 둘째로
송전수 이후에
그와 비길만한 향비파의 명수가 없다는 언급에서도 향비파보다 당비파가 널리 인기를
얻고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며, 세째 이유는 아래에서 지적될 것이다.
당비파가 향악의 노래반주나 향악기의 합주에서도 연주된 사실은『악학궤범』과『금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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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鄕琵琶亦倣唐琵琶, 其設掛則與玄 同, 其調絃撚撥, 學者難之,
不善鼓則不堪也,
有典樂宋太平善彈, 其子田守傳得其法尤妙絶,
余少時在伯氏家聽其聲, 如麻姑爬 , 靡靡不厭, 然比諸都善吉則不及也,
然田守而下, 惟善吉近之, 其他則不可及也, 今則無能之者, 唐琵琶則
田守亦爲第一手, 善吉與之齊名, 今
之伶人多有能者, 至如士庶, 學樂必先琵琶, 然無有拔萃者, 惟金臣番盡
得善吉指法, 而豪縱過之, 亦今之第一手也.『국역대동야승』, 권1.14
(『 齋叢話』,
卷1.561).
63) 『국역대동야승』, 卷1.243 (『 齋叢話』, 卷10.658). 원문은 본고의
각주 28 참조.
보』(琴合字譜)에서도 확인되는 바이다. 밝히 말해서,『악학궤범』권7에 의하면,
당비파가 방향·
당적·당필율·아쟁·통소등과 같은 당악기와 함께 당부악기도설(唐部樂器圖說)에
설명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성종 당시만 해도 향악과 당악에 두루 사용되었음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악학궤범』권7의 당악기 13종 중에서 박·교방고·장고·당비파· 아쟁·태평소,
이상 여섯 당악기가
당악과 향악에서 모두 연주되었다는 사실은 당악의 향악화를 입증하는 증거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음악학계에 이미 제시된 바 있다.64) 성종 때 향악에서 연주됐던 이런 당비파의
전통이 그
이후에도 그대로 계승되었음을 우리는 1572년(선조 5)에 편찬된 안상(安
)의『금합자보』에서 발견
할 수 있다.65) 당비파의 이러한 지식을 상기할 때, 그것이 향비파보다 조선전기에
널리 사용되었다
고 보아야 할 것이고, 문헌에 기록된 비파는 향비파라기보다도 당비파로 해석되는
편이 무난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대동야승』에 기록된 비파에 관한 몇가지
기사를 여러 각도에서 지금까지
고찰한 바를 요약하면 대략 이렇다.
향악 삼현의 하나인 비파가 거문고와 마찬가지로 선비사회에서 애용되었던
사실을 알았다 . 고려
사회의 선비들이 거문고 이외에 가야금을 애용한 사실과는 대조적으로 조선전기의
선비들이 가야금
대신에 비파를 좋아했다는 사실은 음악사적 관점에서 보아 고료사회의
삼현전통이 조선왕조에 이르
러 역사적으로 변천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조선초기 성종 때만
해도 향비파와 당비파가 모두 연주되기는 했으나, 당비파가 향비파보다 선비사회에서
널리 애용됐음
을 알았고, 문헌에 보이는 비파는 향비파라기 보다도 당비파로 해석해도 무난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
다.
Ⅳ.
맺는말 : 鄕樂 三絃의 새로운 理解
고려사회의 향악 중에서 삼현의 전통이 어떠한 양상으로 어떻게 조선사회에
전승되었는 지를 밝힘
으로써, 조선전기의 향악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보고자 함이 본고의 목적이었다.『대동야승』
의 음악기사를 기본사료로 삼고『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부차적인 사료로 삼아서,
거문고 및 가야
금과 비파 이상 두 항목으로 나누어 관련된 사료들을 검토한 결과, 고려의 선비사회에서
형성된 향악
의 삼현 전통이 조선왕조의 선비사회에 그대로 전승되었으나, 그 삼현의 전통이 조선전기의
선비사회
에서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됐음을 확인하였다. 조선왕조에 이르러 새로운 양상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거치면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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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상론은 拙著,『韓國音樂通史』, 335-38쪽 참조.
65) 安 『琴合字譜』, 165-74쪽에 있는 琵琶慢大葉의 악보 참조. 필자가 참조한 영인본은
1974년
에 서울대음대 국악학연구회에서『한국음악학자료총서』제7집으로 펴낸 것임. 국립국악원에서
1987년에 펴낸『금합자보』의 영인본은『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22집의 66-68쪽
참조.
정립된 삼현의 전통에 대하여 자세히 점검한 결과를 여기에 정리하면서, 향악 삼현의
전통이 조선
음악사에서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음악사적 관점에서 찾아서 마무리지을까 한다.
향악의 삼현 중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거문고가 고려의 선비사회에서
정립된 전통을 거의 그대로
조선왕조의 선비사회에 전해준 대표적인 향악기로
드러났다. 그러나 가야금과 비파의 전통은 거문
고의 경우와 달리 조선선비사회에서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었음을 알았다. 밝히
지적하자면, 가야
금은 고려선비들이 갖추고자 했던 사예(四藝)의 하나로 애용되었고, 비파는 고려사회의
기녀들에 의
해서 애용되었지만, 조선왕조에 이르러 가야금은 천인 출신의 기녀나 악공에 의해서
애용되었고, 비
파는 오히려 선비사회에서 애용되었던 것이다. 조선선비들이 가야금 대신에 비파를
애용하였고, 그
대신 기녀나 악공들이 가야금을 좋아했다는 삼현의 새로운 전통이 조선전기 궁중밖의
향악문화에서
정립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제 삼현의 음악문화가 조선전기의 선비사회에서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를 좀더 자세히 정리해보자.
조선전기 선비사회의 풍류문화에서 차지하고 있던 거문고의 위치가 가야금이나
비파에 비해서 확
고부동했음을 여러 실례를 통해서 알아보았다. 거문고가 선비들의 문집에서 현금으로
기록되기도 했
지만, 대체로 금(琴)으로 기록되었는데, 선비사회의 풍류와 관련된 금은 가야금이나
중국의 칠현금으
로 풀이되어서는 안되고 거문고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혀 놓았다. 고려선비들의
경우와 마찬
가지로 거문고가 조선전기의 선비사회에서도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사예(四藝)나
육예(六藝)의
하나로 취급되었는데, 성종 당시 젊은 선비들은 악사 이마지 같은 명인들에게 거문고를
배웠음이 드러
났다. 이렇게 배운 선비들의 거문고음악이 대체로 풍입송(風入松) 같은 노래의 반주음악이었으리라고
추정됐지만, 참판 김유 같은 선비는 독주곡을 배워서 연주함으로써, 당대의 명인으로
꼽히기도 했음을
보았다. 대부분의 선비들이 거문고음악을 통해서 자신의 심신을 다듬고 삶의 낙을
누리기도 했지만, 김
유 같은 선비는 그 당시의 명창 명인들과 어울려 풍류놀이를 즐기기도 했음을 알아보았다.
『대동야승』의 문집 속에서 기녀(妓女)와 관련하여 언급된 금(琴)은 거문고로 해석되기
보다도 가야
금으로 풀이되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였고, 이어서 가야금이 거문고의 경우와
대조적으로
조선전기의 선비사회에서 애용되지 못했고, 그 대신에 천인 출신의 기녀나 악공들에
의해서 연주되
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이와 반대로 비파는 거문고처럼 선비의 사예나 육예의
하나로 애용된
사실에 대하여 언급하였고, 선비들이 애용한 비파가 향비파라기 보다는 당비파임을
밝히고서는, 문집
에 나오는 비파틀 당비파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라는 견해를 내어놓았다.
조선전기 선비사회의 풍류문화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구실을 담당했던
거문고·가야금·비파의 전통
이 비록 고려사회의 선비들이 만든 전통을 계승한 것이기는 하지만, 조선선비들이
물려받은 삼현의 전
통을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시킴으로써, 조선음악사의 새로운시대를 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이러
한 삼현의 새 전통이 다시 조선후기 풍류방(風流房)의 전통으로 이어져 갔다고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
까한다. 조선전기에 정립된 향악 삼현의 전통이 어떻게 조선후기 풍류방의 음악문화로
전승되면서 조
선음악사의 새 시대로 발전되어 나갔는지는 앞으로 음악사학적 관점에서 연구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의
하나라고 하겠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거문고악보를 대략적으로 살펴볼
때, 조선후기
풍류방의 음악문화가 조선전기 선비사회의 삼현전통 가운데 특히 거문고전통과 역사적으로
관련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음악사의 흐름 속에서 향악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조선사회의 풍류문화를 그러한 시각에서 조명해보면, 조선전기 선비사회에서 전승된
삼현의 전통이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을 것이며, 더구나 그것은 조선전기 향악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조금이
나마 이바지할 수 있다고 하겠다. 조선사회에서 형성된 향악의 삼현전통을 새롭게
이해해야 하는 까닭
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보는 바이다.
(1989년
9뭘 12일)
A
Study of the Samhy n Tradition
in
the Early Yi Period
Song, Bang-song
According to the Chapter 32 of the Samguk sagi 『三國史記』,
the Samhy n 三絃,
i.e. six stringed zither (k mun'go 거문고 or hy n'g m 玄琴), twelve-stringed
zither
kahag m 伽耶琴), and short lute(pip'a 琵琶),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category
of Korean music so-called hyangak 鄕樂 of the Unified Silla period(668-935).
Since
then, the samhy n tradition is believed to have been transmitted not only to
the
royal music institutes, but also to private music societies of Kory dynasty(918-1392)
and Yi dynasty(1392-1910) On the basis of such historical sources as Taedong
yasung『大東野乘』or Anthology of Unofficial History and Chos n wangjo sillok『朝
鮮王朝實錄』or Authentic History of the Chos n Annals, the presen
t article attempts
to find out the fact how the samhy n tradition was handed down to private music
societies from the Kory period to the early Yi period(1392-1592).
In light of an extensive examination of these historical sources,
it is said that the
samhy n tradition seems to have been transmitted from private music societies
of the
Kory period to those of the early Yi period without a great historical
change. In
other words, among the three string instruments, there was no historical change
in
the case of k mun'go tradition. It must be, however, pointed out that the kayag
m
and pip'a traditions had undergone much historical change from the Kory period
to
the early Yi period. Like k mun'go kayag m was one of favorite string instruments
from the Kory literati, whereas pip'a was habitually performed by female
entertainers called kisaen
g 妓生 or kiny 妓女 of the Kory period. In the early Yi
period, however, with kamun'go, pip'a became one of favorite string instruments
from the early Yi literati, while kayag m was mainly played by female entertainers.
In conclusion, it is suggested that the samhy n tradition
of the early Yi period is
thought to have been transmitted to private music societies known as p'ungnyubang
風流房 of the late Yi period(1592-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