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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서남북 사반세기-박호준 교수 인터뷰
      • DATE : 2005/07   |   HIT : 8434
      • by 임진모
      • 지금으로부터 꼭 25년 전인 1980년, < N.E.W.S. >라는 타이틀의 생소한 록 밴드 동서남북 앨범이 발표되었다. 의기와 신선함으로 가득했던 이 록 앨범은 일반의 관심을 전혀 얻지 못한 채 나오자마자 매몰되어버렸고, 그룹은 변변한 활동도 해보지 못하고 곧바로 한국 록 밴드의 상습적 굴레인 해산의 낭떠러지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동서남북은 자취 없이 사라져갔지만, 그들의 유일한 그 앨범은 두고두고 음악마니아들 사이에서 회자되면서 적어도 역사에서는 존재를 각인했다. 뒤늦게 앨범을 접한 사람들은 우리에게도 이런 음악을 한 밴드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으며, 당대의 유행에 타협하지 않은 순수한 예술성에 찬사를 보냈다.

        앨범은 그러면서 '국내 최초의 아트 록 앨범'이라는 영예의 수식을 달게 되었다. 동서남북의 멤버였던 현 동덕여대 실용음악과 박호준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현실의 갈채가 따르지도 않은, 그리고 음악적으로도 완성도를 득하지 못한 '비운의 레코드'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역사의 은근한 갈채가 지속되는 '영광의 레코드'로 남게 된 셈이다.

        박호준교수는 이태열, 김득권, 이관형, 김광민, 김준응 등과 함께 결성한 그룹의 명실상부한 지휘자였다. 그는 앨범의 대부분 곡을 작사 작곡했고 편곡 구상의 주체였으며, 마니아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한 곡들인 '나비' '빗줄기' '바람' 그리고 대중성이 넘실댄 '하나가 되어요'는 직접 노래하기도 했다.

        만나자마자 '올해가 동서남북 25주년'이라고 하자 박교수는 “벌써 그렇게 됐나? 아쉬움이 많았던 앨범인데...” 하고 겸연쩍어하면서도 감회에 서린 표정을 지었다. 그는 앨범의 수록곡 하나하나 만든 과정을 비롯해 앨범에 대한 자평, 멤버들의 현재, 자신의 음악관 등을 소상하게 전해주었다.



        동서남북 앨범이 나온 지 어느덧 올해로 사반세기가 흘렀습니다. 소회를 듣고 싶네요.
        부끄러운 앨범인데... 아쉬움이 많죠. 당시 멤버 전원이 아마추어였고,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연습할 곳도 마땅치 않아 제 집에서 했어요. 포크의 선구자이셨던 양병집선배가 제작자였는데, 대중적인 압박이 컸던 시점에서 그런 판을 내준 것도 고마웠죠. 그러나 멤버들이 바라던 완성도는 획득하지 못했어요. 2트랙 녹음에다 후다닥 한 프로에 7곡을 전부했다는 게 가장 아쉽습니다. 2곡만 서울 스튜디오에서 더빙했죠. 2트랙은 노래와 기타만 부분적으로 더빙이 가능하거든요. (스튜디오 대여 시 한 프로는 3시간 30분이다. 90년대에 웬만한 앨범은 대개가 70-80프로를 소요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졸속'인 셈이다)

        사람들이 동서남북 앨범을 접하게 된 것이 81년 초반이니까 녹음은 정확히 25년 전 이맘때쯤에 했을 것 같은데, 맞나요? 그룹은 언제 결성된 건가요?
        제가 78학번(고려대)이니까 대학 1학년 말인 78년 겨울 때쯤 결성했고, 2학년 때부터 활동을 했습니다. 10.26사태(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 때 휴교령이 내려져 학교에 못 가서 연습을 할 수 있었죠. 녹음은 말씀하신대로 80년 초여름 때쯤 들어갔을 거예요. 앨범이 나오고 '국풍81'행사에 게스트로 출연했던 게 기억나네요.


        정규 멤버가 누구였는지 조금은 헷갈리는데, 결성 때의 멤버와 실제 녹음에 참여한 멤버가 다르죠?
        제가 기타와 보컬, 이태열이 베이스, 김득권이 드럼을 맡았고 보컬은 김준응이었습니다. 김준응은 '모래 위의 핀 꽃'과 '그대'를 불렀고 코러스에 참여했죠. 김광민, 이관형, 이동훈이 건반주자였는데 여기가 문제였죠. 들락날락거렸으니까요. 앨범의 전반적인 건반연주는 김광민이 해주었습니다.

        결성의 주체는 아무래도 박호준교수와 이태열씨로 보이는데...
        이태열과 저는 경성고 동창이었어요. 태열이가 다른 고등학교에 다니던 친구 김준응, 이관형을 소개했어요. 김준응은 고1때 만났죠. 나중 김준응(명지대)이 같은 대학을 다닌 김광민을 소개한 거죠. 그룹은 다들 그렇지만 '소개의 사슬'이 작용합니다. 이동훈은 저와 같은 고대생이었고 김득권은 서울대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학교가 다 달랐죠. (이태열은 국민대, 이관형은 청주대를 다녔다고 했다)

        지금은 다들 무엇을 하고 계신지.
        이태열씨는 과거 광고기획사 오디오 PD였는데 이광조의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을 작곡한 분이죠. 지금도 광고 쪽에서 일하는 것으로 압니다. 김광민씨야 재즈 피아니스트로 유명하니까 아실 거고, 제 옆방(동덕여대 실용음악과교수)이에요. 이동훈은 고대교수, 김득권은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다른 멤버는 연락을 자주 못하고 있습니다.

        다시 동서남북 녹음할 당시로 돌아가서, 그 무렵 어떤 음악이 인기를 얻고 있었는지 기억하시는지.
        조용필씨의 '단발머리'가 전파를 휩쓸고 있었던 것은 기억나는데, 글쎄 가물가물하네요. 송골매도 인기였고 산울림이 아주 유명할 때였죠. 블랙 테트라도 있었고...

        그룹을 결성할 때 음악적 지향은 무엇이었나요? 당시의 음악풍조에 대한 반작용이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당시 음악계는 대학가요제가 중심이었어요. 그 분들이 TV를 점령했죠. 대학가의 밴드가 인기를 누렸지만 전 나이트클럽에서 활동하는 밴드에 시선이 가있었죠. 캠퍼스밴드보단 그들이 더 자질이 뛰어났거든요. 예를 들어 '한동안 뜸했었지'의 '사랑과 평화'도 제 영웅 중의 하나였는데, 그들 연주에는 잔 때가 있잖아요. 우린 정말 제대로 된 음악을 하고 싶었죠. '프로 뮤지션십'을 추구했던 거죠.

        그럼 동서남북 음악은 어땠다고 봅니까? 앨범을 만들 때 멤버들이 좋아했던 음악, 이를테면 롤 모델이 있었을 텐데...
        우리야 좋아하던 음악 흉내 내기 수준이었죠. 전 중고교 때부터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킹 크림슨(King Crimson), 넥타(Nektar)와 같은 프로그레시브 록에 열광했죠. (핑크 플로이드 앨범 중에서는 혹시 < Wish You Were Here >를 좋아하지 않았냐고 묻자 자신의 경우는 'Echoes'가 수록된 71년 앨범 < Meddle >이라고 했다) 그런 음악을 듣고 뮤지션을 꿈꾸었구요. 기타리스트다 보니 특히 제프 벡(Jeff Beck)을 숭배했습니다. 멤버들이 좋아하는 음악은 다 달랐죠.
        하지만 전원의 성향이 일치한 그룹은 브레드(Bread)였어요. 당연히 동서남북에도 대중적인 면이 투영되었죠. 동서남북의 음악적 지향은 제가 주도했다고 보는데, 아무래도 밴드에선 (해외음악 동향 파악에) 앞서 있는 사람이 리더를 맡게 되잖아요. 나중 김광민과 만났을 때, 취향이 많이 일치했죠.



        조금 전에 대중적인 면을 언급하셨는데, 첫 곡인 '하나가 되어요'가 그것에 대한 반영 아닌가요?
        맞습니다. 녹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타이틀곡, 즉 매체에 홍보할 곡이 없다는 제작자의 판단에 따라 결정된 곡이죠. 좀 부끄럽죠. 대중적이라는 이름의 곡들이 보면 음악인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맘에 안 드는 경우가 많죠.

        그런 점에서 나름대로 평가할 수 있는 동서남북 곡이 있다면?
        '나비'는 저의 당시 음악적 비전을 어느 정도 구현한 곡이죠. 이 곡과 '바람'이 그나마 애착이 갑니다.

        록 마니아들은 앨범을 '아트 록'이라고 규정하잖아요. 거기에 동의하는지. 저는 수록된 곡들이 저마다 달라 일체감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일례로 '모래 위의 핀 꽃'은 메탈이고, 반면 연주곡 '밤비'는 서정적이거든요.
        인정합니다. 아트 록 앨범이라고 할 수는 없죠. 여러 스타일이 얽힌, 조금은 들쑥날쑥 이었으니까요. '모래 위의 핀 꽃'은 김준응의 목소리를 살려주기 위한 곡이었습니다. 가성적 고음을 구사하는 그의 보컬은 특별한 메탈 풍, 유라이어 힙(Uriah Heep) 성향이었거든요. 그것을 살려 전형적인 록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였죠. '밤비'는 이태열 곡이죠. 이걸 제외하고는 전부 제 곡이라서 균형을 위해 그의 곡이 필요했습니다. 태열이는 대중적 취향을 갖고 있었죠.

        '바람'과 '그대'는 프로그레시브 하다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고 그렇다고 딱히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곡들로 생각됩니다. 조금은 애매하게 들린다고 할까요.
        (웃으며) '그대'는 녹음 하루를 앞두고 간단히 술 한 잔 하자고 했다가 새벽까지 마시게 됐고, 그래서 다음날 술이 덜 깬 상태에서 녹음에 들어가다 보니 앞서 해둔 편곡의 구상이 바뀌어버린 곡입니다. 저하고 광민이의 합작이었는데, 당시 화성적인 개념에 눈뜰 때의 곡이죠. '빗줄기'도 화성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곡이었습니다. 그 무렵 음악은 록에서 퓨전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던 때였거든요. 칙 코리아(Chick Corea), 허비 행콕(Herbie Hancock) 등에 대한 관심이 솟아올랐죠. 그런 흐름을 담아내려고 했던 곡들이었던 셈이죠.

        편곡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편곡을 연습하면서 말로 하던 시절이었죠. 제가 중심에 서서 합주를 거쳐 윤곽을 잡았습니다. 참, 그런데 사운드 입장에서 감독 역할을 해준 장용호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그가 우리가 연주한 스코어링(scoring)을 받아 적은 것을 비롯해서 팀의 정서적, 재정적 그리고 악기의 측면에서 디렉터였습니다. 그의 프로듀싱 힘이 컸죠.

        '하나가 되어요'도 그렇지만 잘만 홍보되었으면 충분히 소화될 수 있는 멜로디의 곡들이 없지 않은데, 왜 그리 결과가 지지부진했던 거죠?
        앨범을 내자마자 팀이 와해되어버렸어요. 활동을 해야 곡이 알려지고 할 텐데, 멤버가 없는 겁니다. 그럼 끝이죠.

        83년에 왜 미국행을 택한 건가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당시 음악은 록에서 퓨전으로 옮겨가고 있었죠. 82년쯤에는 한상원, 김광민, 정원영 그리고 저 넷이 자주 어울렸습니다. 그러다보니 대중적으로는 취향이 점점 멀어졌죠. 음악적으로 궁금해서 견딜 수 없는 무엇이 있었어요. 미국에 유학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선 최소치의 해결책, 기준점 같은 것이 없었어요. (그는 버클리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이어서 대학원코스를 뉴 잉글랜드음악원(New England Conservatory Of Music)에서 밟았다. 그는 “버클리에 만족하지 않았다”고 했고, 뉴 잉글랜드음악원은 클래식이 70%인 곳이라고 했다)

        미국에선 지금 언급한 음악적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나요?
        결국 팻 매스니(Pat Metheney)였어요. 사실 미국에 가기 전부터 알긴 했고, 김광민도 '너 스타일 것이야!'라고 소개한 바 있거든요. 그의 음악은 형식, 변화추구, 기타연주 모든 면에서 굉장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순수 창작적인 면에서 탁월했던 거죠. 결국 음악은 크리에이티브(Creative) 싸움이거든요. 보스톤의 한 클럽에서 실제로 팻 메스니가 기타 치는 것을 들었어요. 한마디로 '난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좌절이었죠. 그때부터 기타를 버리고 피아노로 돌려 창작으로 전환했습니다. (박교수는 나를 음악으로 인도한 앨범도 팻 메스니의 < Offramp >를 꼽았다. “이건 내가 해결을 봐야겠다!”)



        음악적으로 미국에서 느낀 게 있다면.
        미국에선 '재즈'와 '현대 (클래식) 음악'이 접목되어 있습니다. 우린 떨어져있죠. 거기서 서양음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게 소득이었어요. 보고 듣는 측면에서 A클래스 뮤지션과 교류한 것도 영광이구요. 89년 말 귀국했죠. (웃으며) 하지만 미국에 갔다 왔더니 '옛날 사람'이 되어 있던데요.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음악적 행위를 '상업적 가치가 없는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음악을 위한 환경조성'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시장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박교수는 현재 영화음악, 광고음악, 드라마음악에 집중하고 있다. 영화는 그간 <번지점프를 하다> <오버 더 레이보우>를 맡았으며 드라마로는 <재즈> <아일랜드>를 비롯해 최근작으로 <환생>이 있다.

        추천하는 음악가는 토머스 뉴먼(Thomas Newman), 제임스 뉴튼 하워드(James Newton Howard),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로 모두 영화 스코어 작곡가들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크리에이티브 싸움'의 위대한 승자들이라고 할까.

        그는 동서남북 시절부터 지금까지 “따라 치고 모방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비록 동서남북 음악을 좋아하던 음악 흉내 내기라고 했지만 그것은 흉내가 아니라 창작을 위한 움직임이었다. 바로 이 '창작'이란 말이 인터뷰를 시종 관통했다. 거기에는 상업적 틀과 패턴에 철저히 포박되어 질적 콘텐츠가 태부족인 우리 음악풍조에 대한 은근한 질타가 얹혀 있었다.
      • 2005/07 임진모(jjinmoo@izm.co.kr)
      • 앨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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